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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나무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서 꽃 좋고 열매 많으니


내 고등학교 3 학 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용비어천가의 일부이다.


식물의 뿌리가 깊게 뻗으면

물론 바람에도 잘 견딜 수 있지만

얼마간 물의 공급 없이도

토양에 포함되어 있는 물을 흘수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세탁소 앞에는

전철 역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는데

지붕으로 덮여 있다.


지붕은 역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경사진 형태로 계단을 덮고

계단을 벗어나 도로 쪽으로 나온 부분의 지붕은

도로와 수평을 맞추어 처마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 길에 보니

처마 부분에 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신기했는지---


철판으로 된 바닥에

어찌어찌 해서 흙이 쌓이고 (기껏해야 1 인치를 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에서 씨가 날아와 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 척박한 환경에 뿌리 내리기도 힘 들었을 텐데

뿌리를 내리고

어디선가 물을 빨아들여

푸른 잎들을 돋게 한 것이다.

그리고 전철로 오르고 내리는 숱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그 갸륵함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푸른 잎들이 내 눈에 보일 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출근 길에

그 앞에 멈추어 서서 한동안 눈을 맞추었다.

어려움 속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을 내 눈과 마음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지난 주 며칠 동안 폭염이 계속 되었다.

이 번 주 들어 매일 내리던 비가

지난 주에는 야속하게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지난 주말에 더 이상의 더위와 갈증을 견디지 못 한

녀석들은 다 말라 푸른 빛을 잃고

화석이 되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내가 그 식물이라면,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거기에 내려 앉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운명이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척박함에서 희망을 피워낸

그 아이들이 그리 존경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뿌리는 그 아이들보다

몇 십 배는 더 길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텐데도

가끔씩 조금 덥고 갈증이 나면

스스로 눕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째 날이 흐리고 비가 내린다.


이 비가 지난 주에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미련을 갖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바람이 조금 불면

허리가 아프다고,

며칠 가물면 

목이 마르다고 

불평만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물기 하나 없이 말라 버린

천철역 계단의 지붕 위의 식물을 올려다 본다.


철판으로 막힌 것도 아닌데

조금 더 나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그 식물들 앞에서 겸손되이 고개를 숙이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3 주 전 제법 풍성하게 푸른 잎들.



어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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