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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베이글(Bagel)과 비이글(Beagle) (2013)

어제는 둘째 동서와 처제의 결혼 기념일이었다.

그래서  부르클린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스페인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빠헤야와 Stuffed Lobster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 포도주에 담근 빵과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 

커피도 마셨다.

 

동서와 처제는 1984년 1월 8일에 결혼을 했으니 어제로 결혼 29주년이 되는 셈이다.

동서는 내 아내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서의 성품을 잘 아는 아내가 처제에게 소개를 해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동서를 처제에게 소개를 하기 위해

아내와 나 그리고 아내의 형제들이 관악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안양의 어느 포도밭에서 등산 뒷풀이도 했다.

그런데 정작 안양 포도는 이미 다 따버려서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이름만 남은 안양 포도 밭 포도덩쿨 아래 앉아서

꿩 대신 닭이라고

시장에서 사다 파는 외지에서 들어온 신 포도를 먹으며

찡그린 얼굴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신 포도를 먹으며 얼굴은 찡그렸을 망정

동서에겐 처제의 찡그린 얼굴마저 서시처럼 예쁘게 보였던 것일까.

 

그 이듬해 2월인가 3월에 아내와 아내의 동생들은

이미 미국에 이민 가신 부모님 곁으로 이민을 떠났고,

동서는 유학 비자를 받아  미국에 가서

서시보다 더 예쁜 처제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힘들고 고단한 공부를 시작했다.

 

동서는 Albany  뉴욕 주립대에서 MBA를 마치고

Buffalo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동안 처제는 수퍼 마켓의 쿠폰을 오려가며

생계를 이어갔다.

 

지금 동서는 뉴욕 시립대인 Baruch College의

Zicklin School of Business의 학장이 되었다.

Baruch College의 Business School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규모가 큰 (경영)대학이다.

처제는 야채 그로서리 가게의 사장으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성실함은

생활  뿐 아니라 부부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29년 ,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키고 가꿔온 세월.

 

동서부부와 우리부부는 

부르클린의 아파트 아래 윗 층에 살고 있다.

직장 출퇴근이 버거워서 집 놔두고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것이

벌써 두 해를 넘겼다.

저녁 식사도 같이 한다.

아내가 준비하는 저녁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준비는 아내가 하지만

설거지는 늘 동서가 한다.

동서는 설거지 팀장이고 나는 팀원이다.

가끔 출장을 갈 때를 빼고는 설거지는 늘 동서 몫이다.

팀원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잽싸게 그릇을 싱크로 나르고 수도꼭지를 틀 때까지

동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언젠가 동서는 저녁식사하면서

처음 유학 와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아주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유학 초년생 시절엔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좀 겪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고

기숙사 방에 돌아왔는데  룸메이트가 묻더란다.

아침식사로 무억 먹었느냐고.

베이글을  먹었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발음을 해야 하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더란다.

그래서 얼떨결에 비이글(Beagle)이라고 대답했더니

룸메이트가  놀라 자빠졌다고 한다.

 

베이글을 먹었다고 햐여 하는데

비이글을 먹었다고 하니

미국인 룸메이트는 한국인 유학생이

아침식사로 개고기를 거하게 먹은 걸로 오해 했다.

그러니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 건 안 봐도 비데오다.

 

동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강의 시간에 인용해가며

아주 강의를 재미 있게 잘하는 모양이다.

my proffesor.com 같은 곳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도 재미있고 강의를 잘한다고 평판이 났다.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익힌 덕에 남들보다 더 젊은 나이에

정교수가 되었고 지금의 학장이라는 위치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동서가 이 위치에 이른 것이

학문적인 성실함이나 우수함 때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민 1세 치고 영어를 잘 한다고는 하나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출신 교수들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동서의 잘못된 영어를 조카들이 바로 잡아주는 일이 자주 있으니 말이다.

학문적인 면 또한 마찬 가지다.

교수들 중에는 명문학교 출신들이 즐비하다.

 

언어적인 면이나 학문적인 면 모두 최고가 아니면서도

남들보다 앞서는 그 무엇.

남들이 하길 꺼리는 설거지 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해답일 것 같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그의 성실함이 그를 만들었다.

 

처제가 가게를 시작한 뒤

일요일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캐셔를 본다.

어머니 날이나, 발렌타이 에이 같은 때는

가게 밖에서 꽃을 판다.

허름한 청바지 차림의 동서에게서

큰 대학의 학장의 권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섬기려는 마음

봉사하려는 태도가

그를 만들었다.

 

결혼 29주년,

동서와 처제는 서로 섬기며

또 앞으로의 29주년을 향해 성실하게 오늘도 걸음을 뗄 것이다.



 베이글



 

 

 비이글 -개의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