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 이야기 - Paganini의 Violin Concerto
Paganini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때면
35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그가 기억을 비집고 솟아오른다.
가늘고 긴 몸매에 안경을 낀 겉모습으로만 보면
수봉이 형은 가까이 하기에는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를 들어내고 웃는다든가
목젖이 드러나게 큰 소리로 떠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자분자분 이야기를 하기에
그 목소리만큼이나 존재감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술을 마실 때에도 음성의 톤이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았고
박자 또한 늘어지거나 빨라지지 않았다.
마치 성대 어딘가에 메트로놈 같은 장치가 달려 있어
말하는 속도도 엄격히 제한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수봉이 형에 대해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아는 것이 없다.
대방동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로 처음 만났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으로 성균관 대학을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서너 살은 위였고 세례명은 로마노였다.
정확하게 몇 살 위인지를 모른다는 것으로 보아
친한 사이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고
스쳐 지나가면서 인사를 안 하자니 좀 속이 켕기는 것 같고,
그렇다도 단 둘이 앉아 커피나 술을 마시며 속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색한
바로 그런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얼굴이나 이름 기억하는 일이라면
아예 재주가 없는 나이지만 지금껏 수봉이 형은 이름뿐 아니라
그 생김새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예사로운 인연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하루는 수봉이 형이 자기 집엘 가자고 초대를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는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니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
수봉이 형 집이 어디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ㄷ자 아니면 ㅁ자 형의 한옥에 살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방동 어디쯤일 것이다.
마당이 집 가운데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질서 있게 어울리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런 집이었다.
수봉이 형은 엇비슷하게 생긴 방들 중 하나의 문을 열면서
들어오라로 했다..
그 방은 수봉이 형의 둘째 형의 신혼방이었다.
방에 있던 가구 같은 것은 기억의 체에 걸리는 것이 없다.
다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란쯔 전축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다분히 음향기기가 전축이라는,
다분히 촌스러운(?) 아름으로 불리던 때였다.
마란쯔는 전축이라고 하찮게 불릴 성질의 레벨이 아니었다.
'오디오 시스템'이라는 세련되고 고상한 말이라야
비로소 격에 어를리는, 그런 음향기기였다.
수봉이 형은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정보부 요원처럼
신속하게 전축의 전원을 켜고 LP 판 한 장을 턴 테이블에 올렸다.
Paganini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 방에 잠입해서 전축에 손을 댄 사실을 둘째 형이 눈치챈다면
자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기야 그 당시 마란쯔 전축이 거의 200만 원 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처음 학교 선생을 시작하며 받은 월급이 32만 원인가 그랬으니
거의 반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데다가 보너스로 받은 돈도 얼마간 보태야
겨우 살 수 있는 그런 값 비싼 물건(?)이었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소리는커녕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마란쯔 전축이었다.
수봉이 형의 형에게 있어서 마란쯔 전축은
자기의 아내만큼이나 소중히 아끼는 대상이었을 것이고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니
잘못되기라도 하면 충분히 한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듣는 음악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절실한 것인지 모른다.
수봉이 형은 둘째 형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를 이용해서
비밀 작전을 수행한 것이고
혹시라도 둘째 형에게 발각될 경우
나를 끌고 들어가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첫 소절에
내 심장은 거의 멎어버렸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나는 정신이 혼미한 환각 상태에 머물렀다.
수봉이 형의 목숨과 맞 바꾼
마란쯔 전축으로 들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두고두고 기억의 샘에서 솟아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음악이 끝난 후 신속하게 흔적을 지우고
우리는 그곳을 탈출했다.
그 후에 성당에서 사지가 멀쩡한 수봉이 형을 볼 수 있었으니
우리는 비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봉이 형에 대한 기억의 필름은 끊겼다.
어떤 만난 음식이나 값비싼 물건보다도
수봉이 형에게 받은 음악 선물은
내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 이민 와서 내가 처음 산 것이 바로 마란쯔 전축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1000 달러에다가 한 달치 주급 800달러를 합쳐서
마란쯔 전축과 캐논 카메라 한 대를 샀다.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중얼거리며
행복감에 젖었다.
물론 새로 산 마란쯔 전축으로 처음 들은 음악도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 이민 생활이 너무 바쁜 데다가
아이들 키우다 보니 편안히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전축을 살 수 없을 때는 미친 듯이 갖고 싶어 했어도,
막상 전축을 사고 나니 음악을 들을 시간이 도통 없다는 것.
내 이민 생활이 내년 3월로 30년이 된다.
보물처럼 아꼈던 마란쯔 전축도 아이들이
하나 둘 망가뜨리고 이제 남은 것은 앰프와 라디오뿐이다.
상처도 나고 조금씩 녹이 슬었다.
마란쯔보다 더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마란쯔는 아직 버리지 않고 내 곁에 두고
컴퓨터에서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고 있다.
마란쯔 전축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운 파가니니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수봉이 형이 목숨을 걸고 들려주었던 음악.
음악으로 받은 그 귀중한 선물을 떠 올리며
수봉이 형의 마음의 션율까지 곁들여
오늘도 마란쯔를 끼고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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