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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내 마음에 드는)

크로커스와 건망증

크로커스와 건망증




 

지난 주일에 snow drop을 찍으려고

화단 주위를 둘러보다가

금요일 내린 눈 때문에 고개가 꺾인

보라색 꽃을 보고 마음이 아팠었다.

 

그런데 오늘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속살을 드러낸 snow drop을 찍으려고 보았더니

그 뒷편에 크로커스 넷이 활짝 피었다.

지난 주에는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더니 돌연 보라색 꽆잎에

노란 꽃술을 드러낸 것이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몰랐다.

아마도 돌아온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snow drop과 같은 시기에 피어나는 크로커스.

 

그런데 성경의 돌아온 탕자만큼이나 반가운 존재인

이 꽃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렸다.

돌아온 자식의 이름을 잊어버린 꼴이라고나 할까.

꽃에게는 미안하고, 

나  자신은 답답함을 넘어 이 지경이 된,

나라는 존재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하기야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기억력이 자꾸만 하락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연령대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 듯,

'크로아스'라고 외쳤다.

분병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꽃이름 근처엔 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내 입에서

'크로커스'라고 꽃이름이 튀어 나왔다.

그래 '크로커스'

 

아내도 나도 스스로는 이 꽃이름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아내의 힌트에 힘 입어 내가 기억해낸 것이다.

우리 부부가 함께 협동정신을 발휘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흰 종이 위에

크로커스를 살려낸 것이다.

 

꺾인 꽃이 다시 고개를 꼿꼿이 치켜든 것처럼

건망증이나 치매 증상이  훨씬 차도를 보인 것 것 같아

나도 속으로 꽃처럼 환호했다.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

언젠가 읽었던 소설 "Notebook'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라도 서로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는 거니까,

건망증, 치매 이런 증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서로 함께 하는 시간, 함께 하는 기억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곘다.

 

서로의 기억과 힘을 합치면,

크로커스란 꽃이름을 기억해 내듯이

치매라는 몹쓸 증세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크로커스의 꽃말이

'후회 없는 청춘'이라고 하는데

정신 줄 놓기 전에 크로커스처럼

후회 없이 사랑하면 그 사랑의 힘으로

치매로부터도 우리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