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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넥타이 맬 줄 아세요? (1)




넥타이 맬 줄 아세요? (1)

 

내가 처음으로 넥타이를 맨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는 첫 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로 장만한 양복과 셔츠를 입고 거울을 보니 조금 낯설어도 그런대로 근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넥타이를 매야 하는데 집에는 넥타이를 맬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 손재주가 좋으신 아버지는 춘천에 계셨기에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러 춘천까지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재주가 좋으시다 보니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야하는 경우가 없어서 자연 어머니도 넥타이를 매는 법을 모르셨다.

동네 몇 집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넥타이를 맬 줄 아는 남자들은 모두 출근을 한 뒤였다.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고민을 한 끝에 어머니가 동네 세탁소에 가 보자고 하셨다.

세탁소는 아무래도 의류를 다루는 곳이니 세탁소 주인 아저씨는 당연히 넥타이를 맬 줄 알 거라고 어머니는 확신을 하셨다.

세탁소가 의류를 다루는 곳이긴 하지만

오다가다 동네 세탁소 안을 들여다 보아도 아저씨가 넥타이를 매고 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의류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해서 넥타이를 맬 줄 안다는 어머니의 논리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

어머니의 논리대로라면 방직공장이나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넥타이를 맬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내겐 어머니의 논리를 반박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세상이 나의 논리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우려(?)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리가 전혀 없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앞장 서신 어머니를 따라 세탁소로 갔다.

설명을 듣지 않고도 상황을 짐작한 세탁소 아저씨는 일도 아니라는 듯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매 주셨다.

 세상에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그런 곡절을 겪으며 나는 넥타이와의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땀에 젖은 런닝 셔츠 차림의 세탁소 아저씨는 아주 능숙하게 나의 넥타이를 매어 주었고

그 은혜로 나는 무사히 교생실습 첫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니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내가 넥타이를 맬 줄 안다고  믿는 것이나,

 런닝 셔츠 차림의 세탁소 아저씨가 넥타이를 맬 줄 모른다고 단정하는 것이나 다 틀린 것이다.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논리가 들어맞지 않을 경우도 많은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생활 논리가 더 기가 막히고 잘 들어 맞는 경우가 많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깨닫게 된다.

반 백년을 넘어 산 지금까지도 난 넥타이를 맬 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넥타이를 목에 걸면서 난 늘 새롭께 깨닫곤 한다나의 생각이나 논리가 늘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만한 내가 살아오면서 조금은 더 겸손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땀젖은 런닝 셔츠 차림으로 일을 하다가 기꺼이 나의 넥타이를 매어주던

세탁소 아저씨의 사람 좋은 웃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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