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이야기 - 나는 국수주의자
1.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하는
말하자면 국수주의자다.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께서
수색에서 국수 공장을 하셨는데
그 때 너무 국수를 많이 먹어서인지
한 동안 국수와는 거의 절교를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다시 국수와 연을 맺게된 것은
초등 학교 4 학견 쯤인 걸로 기억하는데
할아버지가 국수 기계를 하나 집에 들이시면서 부터였다.
그 국수 기계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밀가루 반죽을 다지는 것과,
국수를 굵기를 조절해서 빼는 것이었다.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처럼
손으로 돌리면 모든게 수얼하게 이루어지기에
집안 일 하는데 게으른 나도
이 일 만큼은 기쁘게 나의 운명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잠시의 수고로움으로
쫄깃쫄깃한 국수를 맛 본다는 것은
내게 노동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깨닫게하는
교육적인 효과까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국수 또한 내게 마음을 돌린 적이 없다.
국수와 나는 그런 사이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
일요일 저녁 이틀을 내리 국수를 먹는 일이 일어났다.
토요일 저녁엔
둘 째 딸이 사는 Park Slope의 'La Villa'라는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새우와 홍합이 들어간
매콤한 스파게티를 먹었다.
사위 Brian이 한 턱 쏜 것인데
지금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직장을 얻은 것을
자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딸 아이가
직장 생활에다가 박사 학위 공부까지 해야 하는 바쁜 생활에서
한 학기를 끝내고
공부라는 짐을 잠시 던 것을 함께 기뻐해 달라고 기회를 만든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스파게티의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미리 허기를 달래라고 갖다 준
따끈따끈한 빵에다가
푸짐한 애피타이저,
그리고 내 몫의 음식,
덧붙여 아내가 남긴 봉골레 스파게티까지 먹어서
배가 부를대로 불렀는데
아이스 크림 가운데 에스프레소를 담은 디저트까지
먹었으니 이 세상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파트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그리움 같은 허기를 느껴야 했다.
참으로 기이한 허기였다.
2.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축구를 하기 위해 뉴저지로 향했다.
구름이 짙은 색조로
지상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집에 돌아 올 때가 되니
조금씩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 밀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내와 큰 아들과 함께
동네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고딕 양식으로 된 성당은
크기도 크기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사제의 강론보다는
성당 구경에 마음을 기울이게 했다.
피곤해서 잠시 고개를 꾸벅이며 졸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
성당과 우리 아파트 중간 쯤 되는 곳에
베이커리가 하나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아들에게 빵 먹고 싶지 않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 베이커리는 아내가 산책 중 마음에 점을 찍어둔
말하자면 아내라는 참새의 방앗간이었던 셈인데
거기 들리기 위해 아들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별 일 아니면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엄마의 예스맨 역할을 충실히 하는 큰 아들은
(마지 못해) 그러자고 했다.
베이커리를 나온 아들의 손에는
빵과 함께 작은 박스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세 가지 색깔의 젖은 스파베티가
예쁜 자태로 담겨 있었다.
시금치가 들어간 그린 색,
호박이 들어간 오렌지 색,
그리고 오징어 먹물이 들어간 검은 색,
이 세가지 색은 내게 상상 속에서 황홀한 맛을 선사했다.
점심 식사로 우리는 따로 김밥을 먹었다.
김밥 재료를 상에 올려 놓고
각자 알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넣고
싸 먹는 방식인데
요즘 아내는 이 방식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각자의 입맛을 존중한다는 구실로
노동의 한 부분을 줄인 것인데
그냥 얻어먹는 내게도 음식 준비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뿌듯함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잠시 낮잠을 잤는데
피곤했던 탓에 곤히 두어 시간을 잘 쉬었다.
토요일 일이 끝나고 멕시코로 휴가를 떠난
Efren을 대신해 일주일 동안
나는 그의 몫을 담당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일요일 오후에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가
두어 시간 열심히 빨래를 했다.
세상에 쉬운 노동이 있으랴만은
두드리고 문지르는 수고로움을 통해
깨끗하게 변신해서 나오는 빨래는
피곤한 노동에 대한 보답으로
희열을 선사해 주었다.
아파트에 올라와 저녁을 먹었다.
짐작대로 당연히 낮에 사 온 삼 색 스파게티가 메뉴였다.
아내는 젓가락과 포크 두 가지를 접시 옆에 놓았는데
우리 셋 모두 포크는 건들지 않고 젓가락으로 스파게티를 먹었다.
스파게티 위에는 베이즐이
그린 색 하나를 보탰는데
아내가 아파트 창 턱에 심어서 키우는 것이었다.
그 베이즐을 수확해서 소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했던 것이 이 스파게티였던 것이다.
색색의 면에 빨간 소스,
그 위에 얹힌 베이즐의 색과 향기는
어느 고급 이탈리언 레스토랑의 그것과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맛 또한 매콤한 것이
내 입 맛에 맞았다.
일요일 저녁 식사도 맛 난 스파게티로
잘 먹었다.
그런데 허기가 졌다.
무언가 더 먹어야 할 것 같은
근질근질한 느낌,
도대체 그 허기의 정체가 무얼까?
3.
이틀 저녁 내리
내가 좋아하는 국수를 먹었는데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꾸 고개를 드는 허기는 그 근원이 무엇일까?
자기 전에 해답을 얻었다.
별다른 소스가 들어가지도 않고,
화려한 색깔은 아니더라도
멸치 국물 우려낸 아주 단순하기 짝이 없는
하얀 소면이
나는 그리웠던 것이다.
나의 허기는 그리움이라고
바꿔 말해도 될 그런 성질의 것임을 알았다.
국수를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나는 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그렇다,
나는 (한)국수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아내의 삼색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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