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심쿵, 지쿵

심쿵, 지쿵


1. 

요 며칠 사이 하루에 몇 번이나 심쿵을 경험하는 지 모르겠다.

 

우리 직원인 Efren이 휴가를 떠난 까닭에

내가 담당하는 카운터  뿐 아니라

세탁소 소임 중 가장 중요한 세탁일을 내가 떠 맡으면서부터

무덤덤해진 내 심장이 회춘을 한 것이다.

 

그 심쿵이라는 것이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가 원인이 되었다면 몰라도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 때문이라면

심쿵의 효력이 내 정서상으로 미치는 영향이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다.

 

월요일에는 내 부주의 탓으로

(나는 분명히 주머니 검사를 했다고 믿음에도)

세탁 과정 중 옷에서 볼펜이 나와 여러 못을

일크로 법벅을 만들어 놓았다.

 

깨끗이 때와 얼룩을 빼서 세탁기에 넣고

세탁 과정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세탁기의 문을 여는데,

그 때 세탁기에서 나오는 옷들은

마치 목욕을 마치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환한 얼굴로 내게 손짓을 하는 것 같아

그 때만큼은 힘든 노동 중에 희열을 느낀다.

 

그 환해야 할 빨래에 잉크로 범벅이 진 모습과 만났을 때

심쿵하지 않을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런 경험은 세탁소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느낌이 활 와 닿을 것이다.

 

결국 몇 시간 사투 끝에 다른 옷에 묻은 잉크를 다 빼고

한 장의 셔츠에 묻은 잉크는 포기를 해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셔츠 한 장 빼고 다른 옷에게서는

다시 환한 마소라 돌아왔으나

정작 내 얼굴은 검게 타 들어갔다.

셔츠 값을 보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옷에 묻은 잉크를 빼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싫은'인내심과 시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휜 바지에 묻은 잉크 자국을 잘 빼서

세탁기에 넣었다가 세탁기 문을 열며

다시 심쿵을 해야 했다.

잉크 하나 없이 무결점이어야 할 흰 바지에

퍼런 잉크 색이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번져 있는 것이 아닌가?

콩알보다 작았던 잉크 얼룩이

손바닥 반만하게 그 영토를 확장한 것이었다.

 

그 배반감이란----

 

(무척 황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잘 살펴 보니

바지 주머니 속에 진하게 묻어 있던 잉크가

화학 약품에 녹아 바지 위로 숨겼던 정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영향이 가지 않게

조심스레 얼룩을 빼고 나니

이마에 땀이 흘렀다.

 

파란 잉크 색의 땀 방울이.

 

2.

 

그제부터 손가락 끝 손톱의 양 옆의 살이 

약간 부어 올랐다.

아릿아릿 아파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무엇에 닿으면 '깜짝깜짝 '이라고 말하기엔 영 못 미치긴 하지만

아프다.

 

심쿵은 아니어도

손가락 지, 혹은 몸 육자를 넣어

지쿵, 혹은 육쿵의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평상시 우리 세탁소의 빨래를 하는 Efren

일 하면서 고무 장갑을 끼는데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몇 푼 되지는 않아도

제법 많은 양의 고무 장갑을 소비하는데다가

아무래도 일 하는데 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막상 Efren의 일을 하다 보니

고무 장갑을 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맨 손으로 일을 하다 보니

손에 화학 약품이 묻고

당연히 손 끝이 약해진다.

 

일상 생활에서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이 쓰는 것 중의 하나가

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손가락 끝의 통증은 생사가 걸리지는 않아도

손을 쓸 때마다 아프고 불편하니

고무 장갑을 끼는 것이다.

 

나도 어제부터 증세가 심한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고무 장갑을 끼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3.

 

영어 표현에 'Be in one's Shoes'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신을 신는 다는 뜻인데

맞지 않는 신을 신고 걸음을 걷기가 불편할 것이다.

특별히 나에게 젊은 여자들이 신는 

뾰족구두를 신고 걸으라고 하면

서둘러 손사래를 칠 것이다.

 

결국 누군가의 신을 신어 본다는 것은

신발 임자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의 신을 신고 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모른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 가는 것이

나란 사람이다.

 

다음 월요일에는

휴가에서 돌아온 Efren이 다시 빨래 솔을 들 것이다.

어디 좋은 고무 장갑이 있으면 

그가 오기 전에 몇 켤레 사다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