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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희미한 옛추억의 그림자 (부록 1)

희미한 옛추억의 그림자 (부록 1)


결국 나는 팬텀기를 타지 못했는데

그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전투기를 타지는 못했어도 비행기 타는 훈련까지는 해 보았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은 날아 본 것과

비행기를 타는 훈련을 한 것과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신체검사와 간단한 기본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공군 항공 의료원에서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나와 대방동 신작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올라가야 했는데

그 언덕의 정상엔 길 양쪽에 문방구가 있었다.

오른 쪽 문방구를 끼고 돌면 공군본부 담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담을 따라 얼마를 가면 오른 쪽으로 선생님들의 관사가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정식으로

이 길을 따라 출근하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관사와 학교 사이엔 

비공식 개구멍 같은 것이 있어서

많은 선생님들은 그 문을 통해 출퇴근 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관사를 지나 또 얼마를 더 가면 거기 공군 항공 의료원이 있었다.


항공 의료원에 가기 전에 문방구가 있었는데

문방구에 대한 기억은 거의나지 않는데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공책, 연필 볼펜 자 같은 문방구 뿐 아니라

석쇠에 사각형의 넓쩍한 오뎅을 구워 팔기도 했다.

늘 허기를 뱃 속에 두르고 살던 시절에 먹던

군 오뎅은 마약 같이 그 허기를 치료해 주곤 했다.


학교 안에도 매점이 두 곳인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매점에서 파는 라면과 짜장면은

원 재료 이외에 파나 오이 같은  

첨가물이 전혀 없는 순수한 라면과 짜장면이었어도

그 맛에 딴지를 거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 말라빠진 단무지도 아주 명랑한 소리를 내며

우적우적 씹어 먹던 우리의 청춘은 그런 라면과 짜장면을

먹지 않고 들이 마셨다.


오다가다 혹 오른 쪽 문방구 집의 딸을 본 친구들도 있었는데

혹 마음에 두었던 친구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기억에 없었는데 

우리 마님의 초등학교 친구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 친구드 중에 

그 여학생에가 눈독을 들였을 친구가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끔씩 공군본부 담장 너머로 공군 아저씨들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담배나 소주 등의 심부름을 시키곤 했는데 

남성의 징후가 물씨 나는 고등학생들 보다는

중학생들이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공군장병들을 위한 사적 심부름을 해주었다.

담장과 문방구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함으로써

알사탕 하나 정도는 심부름 값으로 챙겼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사제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이 

공군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통해 

우리 영공 수호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909


(한국 다녀와서 첫 출근을 해야 하는 까닭으로 여기서 서둘러 마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