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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4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4

우리 담임 선생에게서 자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상도 남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자상함이 결여는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징징거리지도 않았고
잔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나같이 섬처럼 살기 원하는 사람이 그냥저냥 견뎌내기에는 그만이었다.
오죽하면 우리반 에이스였던 내 성적의 세부를 들여다 보지 않아서
국어와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의 성적이
영양실조에 걸린 실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지금도 그렇겠지만
고 3 담임은 진학지도도 겸하고 있었다.

웬만한 담임 선생이라면
학생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약한 과목이라든가
좀 더 노력을 집중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조언을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담임은 아주 무관심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의 증언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차피 세심한 주의와 지도를 받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나란 인간이 그렇다.

나같이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궁시렁 대며 뒷담화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 둔 것도 우리 담임선생이었다.

우리 담임은 위로는 코와 귀 밑을 연결하는 선,
그리고 다시 그 앵 쪽 선을 밑으로 이어 목젖에 이르는,
거의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면적에 수염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 수염을 일주일 동안 깎지 않으면
삼국지의 장비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 하루 이틀 수염을 깎지 않으면
이미지 관리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담임에게서 장비의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없는 것이
자주 수염을 깎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수염과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체력과 지력의 소모가 이루어졌으니
학생들에게 기울일 관심과 사랑은 이미 고갈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 수염이 우리 담임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다.
오로지 수염의 성장을 저지하려는 노력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보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담임이었다.

그래도 가끔씩 웃을 때면
까뭇까뭇한 수염 사이로 흰 이가 드러나곤 했는데
그 미소는 거의 치명적일 정도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인상은 바로 배우 백윤식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운명적인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방위성금이라는 것이 있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한달에 한 번씩
집에서 헌 신문이며 빈병 등등의 고물을 학교에 가지고 오도록 했다.
학교는 그걸 팔아서 방위성금을 내고
나라는 그 돈으로 국가 방위에 필요한
전투기나 다른 무기를 사는데 보탰다.

IMF의 어려운 시절에도 국민들의 장농 속의 금붙이가 맹활약을 했듯이
우리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빈 병이며 헌 신문지와 잡지 같은 것이 모여서
전투기가 되어 하늘을 날던,
말하자면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이 교실에 들어와
비장한 어조로 엄포, 혹은 협박에 가까운 사설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이따 점심시간까지 빈 병이나 신문지 같은 폐품들을 구해 놓을 것, 이상!"

교실 안이 스르르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사면체의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비록 잘 깎은 수염이었지만
그 수염이 마구마구 돋아난
장비의 얼굴을 담임 선생에게서 보았다.

(일단 긴장을 고조시킨 다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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