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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2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2


그 사건(?) 이후에 3 반 친구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다.

3학년 3 반은 문과 우수반인데

우리 담임선생이 그 반 수업 중 내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3반이 우수반이지만 자기가 담임하는 4 반엔

학써이라는 3 반 학생들보다 걸출하게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추측컨대 똑 같은 문제를 3 반 수학 시간에 풀라고 했는데

푸는 학생이 없었을 것이고

달랑 그 사실 하나로 나를 과대평가할 정도로

단순한 뇌세포를 가진 이가 바로 우리 담임 선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뇌의 구조와 수학 실력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그 때 알아차렸다.


한 때는 내가 제법 공부를 한 것 같기는 하다.

당시 보통 친구들이 정통종합영어를 가지고 씨름할 때,

나는 일본에서 제일 수준 높다는 

영어 참고서 '1200'제를 가지고 독학을 했다.

나는 2학년 여름방학 때 보름 동안 

혼자 밤낮으로 공부를 한 끝에

정통종합영어를 띠었다.(책을 띠었다는 표현이 아직 사용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 지를 판별하기 위해

'배치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는데

한 달에 한 번이었는지 아니면 분기에 한 번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내 기억으로 문과 240 명 중 20 등 밑으로 떨어진 적은 없었고

제일 성적이 좋을 때는 7 등까지 했으니

흔히 SKY 대학은 통계만으로 판단하면 따 놓은 당상이었다.


배치고사 성적은 붓글씨로 흰 종이에 

성적 순으로 써서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처럼

복도 벽에 게시를 하곤 했는데 아마 50 등까지 이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내가 아는 후배들에게

내 성적을 한 번 보고 오라고 등을 떠 밀기도 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나처럼 되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은 내 자랑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배 중 하나가 베트남 대사관에서 일하는 박상식인데

베트남에 있었던 한명섭 친구를 통해 알아 본 결과

내 이름을 기억하기는 해도 나머지 기억은 백지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쉽지만 증인 하나를 잃었다.)


그런데 여기서 돌발변수가 생겼다.

어제 글을 읽은 강신화이가(신화이는 3반)

자기는 우리 담임 선생에게 결단코 수학을 배운 기억이 없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

다른 3 반 출신의 증언이 필요한데

그 증언이 신화이와 같은 내용이라면

내 글의 신뢰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글의 신뢰성 뿐 아니라 내 인격까지 담보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까닭을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깔때기 이론이다.

모든 게 자기 자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 자랑을 위해서 내 인격까지 올인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기 자랑을 위해서는 

사실까지 왜곡하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비아냥부터

아직도 유아적인 정신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유치 찬란한 인간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각종 원색적인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내 자랑에 긴 시간 동안 굶주렸기 때문이다.


신화이와 같은 내용을 증언하는 친구가 등장한다 해도

나는 깔때기 노릇을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

이왕 이런 글을 쓸 기회를 잡았으니

누가 뭐래도 뻔뻔하게 나는 무소의 뿔처럼 간다.

중간에서 멈출 거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어린 시절 내 삶의 멘토가 된 엿장수는

누구의 비난이나 불평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가위를 짤깍댄다.


소리의 크기부터 일 분에 몇 번,

어떤 리듬으로 가위질을 하는 것은

오로지 엿장수 맘대로인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엿장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정신세계를 흠모해 왔다.


소리가 너무 크네,

너무 자주 가위질을 하네 하고 투덜대는 친구들은

여기서 글을 읽는 걸 멈추길 바란다.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은 불평거리가 아예 없는데

글을 읽으면서 궁시렁대는 사람은

엿장수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궁시렁대지 말고

엿판 얹힌 구루마와 가위 하나 사서

보란듯이 가위질 하면 될 것이다.


엿장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엿장수의 박애주의에 대해 잠시 더 이야기를 끌어가기로 한다.

엿장수는 집 안의 빈 병이나 날짜 지난 신문,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가져가는 대신

달콤한 엿을 바꿔준다.


아무 짝에도 쓸 수 없는 고물을 가져가며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 엿을 바꿔주는

엿장수의 그 아름다움을 나는 닮고 싶어 했다.

귀한 일을 하는 엿장수의 가위질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않고 존중과 존경을 보내야 한다는 확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쯤 해서 엿장수의 사설은 그만 두고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한다.

엿장수 이야기를 꺼낸 것이 

무모하고 논리가 없다고 할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름대로 나는 포석을 한 것이다.

빈 병 신문잡지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우리 담임선생에 대한 불만은

바로 옆 반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비밀스런 흠모의 마음으로 바뀌어 내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키가 크고 조금 과하다 할 만큼 날씬하셨던 선생님은 

(우리 담임과는 달리 호칭 뒤에 님 자가 들어간 것을 주의 깊고 교육받은 독자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깨가 조금 구부정 했고 다리가 길어서 '학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는데

나는 그렇게 부르는 친구들을 속으로 경멸했다.

지금 속으로 움찔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선생님 이력서에

이름과 생년 월일만 국어 선생님께서 작성하시면

우리 담임 선생의 경우와는 달리

나머지 칸은 나라도 빽빽하게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 두 가지 만 소개하기로 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수필가 김소운 선생의 글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내 기억으로 세 편이 실려 있었는데

그 내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바로 그 김소운 선생을 학교로 초청을 해서

그 분의 강연을 학생들에게 듣게 했던 장본인이

바로 3 반 담임이셨고 국어를 담당했던 그 선생님이셨다.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마음과 정신을 선물하기 위해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 1 학년 때,

김소운 선생의 '목근통신'이라는 수필집을 사서 읽었는데

그 중 한 구절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문둥병자일지라도 

나의 어머니를 클레오 파트라와도 바꾸지 않겠다."


여기서 어머니를 조국이나 아내로 바꾸어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클레오 파트라를 나의 아내로 바꾸자니 조금 껄쩍찌근 하다.

나의 아내는 문둥병자도 아닐 뿐더러 

미모면 미모, 지혜면 지혜가

이미 클레오파트라를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 글을 읽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아마 3 학년 첫번 째 수업 시간이었을 것이다.

교과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학교 공부보다도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신문 사설을 읽으라는 권유를 선생님은 하셨다.

누구 말도 잘 듣지 않는 내가 어찌 된 영문인지

국어 선생님의 말씀은 꼬박꼬박 잘 지켰다.


신문 사설을 매일 읽다 보니

한자 실력뿐 아니라 제법 논리적 사고를 하게 되고

균형 감각도 생기게 되었다.


세상에서 내 아내가 제일 예쁘다는 편견을 바꾸지는 못 해도

나는 스스로 균형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데

그것은 오로지 국어 선생님의 강요가 아닌 권유를 받아들인 덕이다.


자음접변이니 구개음화니 하는 국어 문법보다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격이나 사고 방식을 내용으로 하는

삶의 문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선생님을 나는 아직 잊지 못 한다.


내가 학창 시절 만났던 선생님 중 존경하는 한 분이 

바로 3 학 년 때 국어 선생님이였고 3 반 담임 선생님이셨다.


(새벽 한 시에 일어나 주저리 주저리--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일찍 통도사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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