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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한양 성곽 둘레길 걷기

 

어제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서울 성곽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집결지인 운현궁에 첫 발을 들이밀었을 때 마음이 설렜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보는 얼굴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문을 나서고 처음으로 보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40 년이 넘는 세월의 벽이 사라질 수 있을지,
그 어색함을 어떻게 감당할지
내심 걱정도 되었습니다.

설렘과 걱정,
이 두 마음으로 운현궁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운현궁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까닭에
일찍 출발해서 인사동 골목길을 지나 걷다 보니
운현궁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에 살면서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문턱을 혼자 넘을 때의 어색함과 호기심,
이 두 가지는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것 같아서
천천히 운현궁을 거닐었습니다.
옛날, 사람이 살 때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천천히 거닐다 보니
방의 구들이 따뜻해지고
글을 쓰고
난을 치는 대원군의 모습이며
보초를 서는 군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운현궁이 생명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앞마당으로 나와 보니
그 새 꽤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같이 낯가림이 심한 사람은
알고 있는 얼굴과 만나는 것은 익숙하지만
육심을 넘게 살았어도
어색함의 문턱을 넘어 손을 마주 잡기가 힘이 듭니다,

반갑고 어색한 만남의 의식을 마치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노봉구 친구가 모래주머니 같은 걸 하나 내게 건넸습니다.
2월 중순이 지나 3월에 더 가까이 발을 디디고 있음에도
아침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나를 보고
모래주머니 같은 느낌의 핫팩을 지니라고
준 것입니다.
셔터를 누르려면 손이 따뜻해야 한다면서-----

손발이 차서 늘 핫팩을 가지고 다닌다는 봉구 친구는
자기 손을 덥힐 핫팩을 미련 없이 내게 건넨 것입니다.
주는 것도 마음이고, 받는 것도 마음입니다.
아무런 사심 없이 무언가를 주고 받을 때,
핫팩 하나로 마음이 이어지고,나누어집니다.

우리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두터운 얼음벽이
핫팩 하나로 녹아내렸습니다.
녹은 마음으로 우리는 운현궁의 문턱을 넘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한양 성곽 둘레길 여정은 현대 사옥을 그 첫 방문지로 해서
성곽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해박한 지식과 열성으로 성중이는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중앙 중학교를 지나 언 거 길을 오르는 어디쯤에서
박영규를 만났습니다.
24 시간 일을 하고 근무교대를 마친 후
헐레벌떡 뛰어온 것입니다.

그 고단한 시간 노동 끝에 피곤해진 몸을
집에 가서 눕히고 싶었을 텐데
멀리서 온 친구를 보겠다고 숨 가쁘게 언덕을 뛰어 온
영규 친구 때문에 미안하고 고맙고,
무엇보다도 부끄러웠습니다.

나 같으면 우주 저 끝에서 친구가 왔다고 해도
일단 집에 가서 따뜻한 뮬로 샤워를 하고
서둘러 자리에 누울 것입니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만나도 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인색한 마음 씀씀이 때문이지요.

내게 핫팩이 있었다면
주머니 안에 고이 모시고 내 손으로 꼭 쥔 채
주머니 밖으로 내어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많이 즐거웠고 또 그만큼 부끄러웠습니다..
내 함량 미달의 사람됨 때문이었습니다.

공자님이 '3 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씀을 하셨다지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40 명이 넘는 일행은 모두 못난 나의 스승들입니다.

우리는 동대문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난생처음 복국이라는 걸 먹어 보았습니다.
옆에서 세진이가 복요리 전문가 수준으로
먹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복이라고 하면 일단 독성이 있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기에
나는 세진이가 먹는 걸 보고
따라서 먹었습니다.
바로 먹지 않고 세진이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먹었습니다.

같이 걷고 같이 먹는 동안
날도 풀리고 몸도 마음도 햇살처럼 더워졌습니다.
가끔씩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핫팩을 만지작 거리며
찬 손을 녹였지만
점심 식사 이후엔 더 이상 핫팩을 만질 일이 없었습니다.
스웨터 하나는 벗어서 허리에 묶고 다녀도 될 정도로 날이 풀렸습니다.

동대문에서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
경환이의 옷가게로 개업을 축하하러 가는 친구들,
그리고 날 어두워질 때까지 뿌리를 뽑자는 친구들.

나도 뽑는 김에 확실하게 뿌리를 뽑는 쪽으로 붙었습니다.
하루 종일 능숙하고 전문적인 안내를 맡은
성중이가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이화마을을 지나 대학로 부근에 있는 빈대떡 집이었습니다.

빈대떡 신사

우리는 거기서 뒤풀이를 했습니다.
두부와 김치,
막걸리와 빈대떡이 어우러진 식탁을 가운데 두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그런 기막힌 조합처럼
어우러졌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이 흘러갔고,
내 뺨은 술 익은 노을처럼 빨갛게 익어갔습니다.

빈대떡 신사라는 가요의 가사처럼
돈이 없어 매 맞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먹고 마셨습니다.
가볍게 술이 올랐고
그만큼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다시 쌀쌀한 바람이 손과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입니다
잊고 있었던 핫팩이 여전히 더운 몸으로
내 손을 살포시 쥐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잊고 있어도 여전히 따뜻한 그대들의 사랑이
주머니 안에서 차가워진 내 손을 맞아주었던 것이지요.

마치 40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변치 낳는 그대들 사랑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