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1.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쓴 자전적인 희곡이다.
대학시절, 기성극단이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무대에 자주 올리던 작품인데
희곡을 읽어 본 적도 연극을 관람한 적도 없다.
다만 제목이 폼이 나는 것 같아서 내 기억 속에 제목만 달랑 남아 있는,
마치 큰 나무 중 '마지막 잎새'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작품이다.
작가가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글''이라고 했을 정도로
자기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인 것 같은데
읽지도 보지도 않았으니 더 이상 뭐라 이를 말은 없다.
2.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후 다섯 시부터 뉴욕 일원에 눈푹풍이 예고 되어 있었다.
눈은 다음 날 아침 7 시나 되어서야 그친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는 눈이 올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그리 어둡지 않고 간간히 햇살이 비추었지만
내 마음 속엔 구름이 몰려와
어둡고 불안한 기운이 짙게 드리운 것 같았다.
오후 일곱 시부터는 아예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제 시간에 뜰 수 있을까?-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토요일 하루를 넘기고
다음 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 떠날 예정이었다.
오후 9 시 반 쯤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영하의 온도로 푹 가라앉지 않은 날씨 덕에
길위의 눈이 얼어붙지는 않았어도
많은 양의 빙수를 길 위에 뿌려 놓은 것 같이
길은 질척대고 있었고, 가끔씩 우리가 탄 차는
커브를 돌 때 미소하게 휘청대곤 했다.
길 가에의 가로수는
흰 눈꽃을 피우고 있어서
잠시 모든 걸 잊고 차창 밖의 환각 같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비행기는 늦게 출발한다는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너무 공항에 일찍 도착한 덕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눈과 내 눈 뒤쪽의 부비동이 무언가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미 잠자리에 들어야 했을 시간에
강제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슬슬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눈을 감아 보아도 불어 놓은 풍선을 지긋이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이
내 눈에 그리고 내 머리속과 목덜미에 반갑지 않게 찾아왔다.
예정 시간에 탑승이 시작되었지만
비행기는 출발시간이 다 되어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의 지루한 시간이 지나자
부기장의 한국어와
영어 액센트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 기장의 영어 안내 방송이 기내에 흘러 나왔다.
답답한 실내에 창문을 잠깐 열어 환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비행기는 기체의 제설 작업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설작업이 끝나는대로 이륙할 에정입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불편함이나 미안함의 기색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어조의 안내 방송이 끝나고도
한 시간이 넘도록 무턱대고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앞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서
CNN 뉴스를 보았다.
플로리다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건 경위며, 범인의 인적 상황,
그리고 친구와 자식을 읽은 부모들의 절절한 슬픔이 가득한 인터뷰,
대통령의 대책 등이 방송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책들을 믿지 않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미 총포류 협회'에서 정치인들에게 바치는 돈으로
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너무나도 높고 긴 '만리장성'을 쌓아 놓았다.
그 대책이라는 것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평범한 키 작은 어린아이에게 그 성벽을 넘어가라는 것과 같은 공허함,
아니 절망감만 남겼다.
돈은 총기 사고로 한 해에 수십, 수백명 씩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보다 훨씬 중요하고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대책이라는 것은 안도감을 주기 보다는
나의 정치인에 대한 미움의 무게만 늘려 놓았을 뿐이다.
기다리는 시간의 답답함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의 무책임한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눈과 머리속의 고통은 점점 깊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눈과 관자놀이를 손으로 마사지 해 보았지만
증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밤은 더 깊어졌다.
'밤으로의 긴 여로'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내 몸의 기도 맥도 다 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나를 배반하지 않고 느려터져도 흘러는 갔다.
그리고 비행기는 마침내 뉴욕의 땅을 날아 올라
한국으로 가는 하늘의 길 어딘가를 날고 있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밤으로의 긴 여로'가 시작되었다.
어둔 밤에 출발해서
인천 공항에 도착하는 동안
나는 단 한 차례의 해를 만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밤으로의 긴 여로였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어둠의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고
내 눈과 머리속에 머물던 고통도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열 네 시간 동안
나는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멍한 상태의 시간을 지나왔다.
내 눈과 머리 안에서 아픔이 소란을 떨었다.
그리고 잠이 쏟아지는데
머리를 바닥에 눕히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머리를, 내 육신을 바닥에 나란히 눕힐 수만 있다면----
눕는 것,
내 육신이 누울 수만 있다면
죽음도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열 네 시간 동안.
3.
중국 출장 길에 한국에 들려
어머니를 뵘고 온 동생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이미 '밤으로의 긴 여로'를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이미 치매가 시작되었고,조카 하람이와 내 여동생의 이름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어머니 소식은
이미 내 마음 속에 어둔 물감을 확 뿌려 놓았다.
게다가 뇌의 문제 때문인지 넘어지셔서
어깨와 어깨 주변의 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은
길이를 알 수 없는 어둔 물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들게 했다.
4.
호텔에 짐을 풀고
분당의 한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갔다.
무심한 아들이지만 나와 며느리의 얼굴을 보고
얼굴이 확 피셨다는 간병인의 전언은
내가 얼마나 부실한 아들인가를 부조상처럼
아주 도드라지게 나타내게 했으니 역설도 그런 역설이 없었다.
자식 셋이 다 미국에 사는 관계로
어머니를 돌보는 짐을 외사촌 동생댁 부부가 덤테기 썼다.
가늠할 수 없는 희생의 손길로
지금까지 병원이며 주거, 기타 등등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모든 문제를 껴안기도 하고 매만지기도 하면서
일산에서 안성으로 안성에서 분당 사이의 거리를
손품 발품 팔면서 애를 쓴 외사촌 동생 부부의 헌신 덕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사실 수 있었다.
나는 외사촌 부부의 헌신 앞에서
어떤 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어머니는 수요일에 수술을 받으실 예정이란다.
수술 후의 경과도 전혀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어깨 뼈의 수술이 잘 된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치매의 늪에 발을 뺄 수는 없으니
또 어쩐단 말인가?
어머니의 돌이킬 수 없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는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밤으로의 긴 여로'가 시작되려는
희미한 증세들이 조금씩 내 몸에서 그리고 마음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동작동 현충원에 들렸다.
아버지는 이미 '밤으로의 긴 여로'를 마치셨다.
아버지의 뼈가 담긴 항아리 앞에서
이미 지나간 아버지의 밤과,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들고 있는 어머니의 밤,
그리고 아직 빛은 있어도 땅거미 깔리기 시작하는
나의 밤을 생각했다.
-내 밤으로의 여로는 얼마나 길고 얼마나 아프고 어두울까?-
5.
어릴 적 나는 미나리를 싫어했다.
비린낸 나는생선 찌개엔 즐겨 미나리가 얹혔다.
맵고 쌉싸르한 미나리 맛을
어린 시절의 내 입 뿐 아니라 온 맘과 마음이 거부를 했다.
젓가락으로 미나리는 걷어내고 생선살만 골라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미나리를 먹기 시작했다.
생선 찌개에 들어 있는 숨이 죽어 있는 미나리 뿐 아니라
양념해서 무친 미나리 나물의 그 알싸하게 강한 맛을
내가 감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나리 맛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선찌개의 진정한 맛은 생선 뿐 아니라
미나리가 들어가야 진정으로 깊은 맛이 우러나게 되는 법이다.
어머니의 깊어지는 '밤의 여로'를 지켜보며
나는 머지 않아 시작될 내 밤으로의 여로를 생각한다.
그 여정이 얼마나 길고 어두울 지 몰라도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생선찌개 속에 들어 있는 미나리를 골라내지 않고 먹듯이
그렇게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미국의 극작가 E.오닐의 유작(遺作)인 4막 희곡.
1956년 초연(初演). 자서전적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의 내용은 늙은 무대배우인 아버지 제임스 티론, 마약중독자 어머니 메리, 알코올 중독의 형 제미, 병약하고 시인 기질을 가진 동생 에드먼드(청년시절의 작가) 가족 4명이 애정과 증오의 교착 속에서 서로 공격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어느 하룻동안의 허무한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작자는 육친(肉親)의 비참한 과거를 폭로한 이 작품을 ‘피와 눈물로 점철된 오랜 슬픔의 연극’이라고 불러 생존시에는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이 연극이 상연되자 무시무시한 긴박감은 관중의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1956년 예일대학에서 간행되어 사후(死後)에 4번째 퓰리처상(賞)을 받았다. 작가 오닐은 이미 1936년에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旅路] (두산백과)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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