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lone
이틀 째다.
'Home Alone'
지난 토요일 오전에 막내 아들이,
오후엔 큰 아들이 런던으로 떠났다.
큰 아들은 로스쿨 마지막 학기를 런던에서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학기 시작하기 전 미리 여유 있게 가서
여러 준비를 하는 동안,
마침 휴가 중인 막내 아들이 합류해서
함께 유럽 몇 도시를
함께 여행할 일정을 잡아 놓고 떠난 것이었다.
여행이 끝나면
큰 아들은 학기가 끝나는 5 월까지 런던에서 머물고
막내 아들은 벨지움에서
바로 South Carolina에 있는 부대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들들의 계획에
아내가 불쑥 끼어든 것이다.
이유?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내가 우리집 최고존엄의 행동거지에
제한을 둘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다가설 순 없는 일이다.
참새가 봉황이 나는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무언가 깊고 큰 뜻이 있으려니 하고
입 막고 있을 따름이다.
하기야
뒤에 남아야 하는 백성의 처지가 가련했던지,
아니면 미안했던지
지난 일요일 은근히 내게 거래를 제안하기는 했다.
"파리 가는 비행기 표가 딱 한 장 남았는데 살까?"
나도 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뭐 중뿔난 이유는 없지만
굳이 이유를 대자면
내가 그리 호락호락한,
쉬운 남자 (Easy Man)가 아니라는 걸
때때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후회하고 있다. 쉬운 남자로 살면 즐겁다.)
결국 아내는 월요일 저녁에 런던으로 떠났고
나는 독신생활 2일차를 경건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독신생활의 가장 불편한 점은
아무래도 삼시세끼 해먹어야 하는 일이다.
아침은 보통 시리얼과 견과류를 먹으니
요리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점심 저녁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요리엔 소질도 열정도 없는 나로서는
여간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
한국 같으면
문만 나서면 내가 좋아하는
갖가지 음식을 파는 곳이 넘쳐 나지만
내가 있는 곳은 그렇지 못하다.
아내는 이제는 어딜 가면서도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지 않고
아주 무심하고 자유롭게(?) 잘도 떠난다.
가끔씩 내가 "많이 컸다"며
칭찬인지 뭔지 아주 애매한 말로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떠나는 자신을 정당화 한다.
아마 이만큼 키워 났으니
내 앞가림은 내가 하라는 뜻일 것이다.
먹는 일에 대한 부담만 없으면
독신 생활도 그런대로 즐거울 수가 있다.
집에 들어가며
대충 신을 벗어 두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으니
자유도 그런 자유가 또 없다.
이 닦고 세수하라고 마님이 법을 정했어도
마님이 안 계신 동안은'
세수 먼저 하고 이를 나중에 닦는
범법행위를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으니
그 또한 독신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게다가 혼자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아도
방해를 하거나 간섭을 하는 이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엔 Emma Watson이라는 예쁜 배우가 나오는
'Beauty and the Beast'라는 영화를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평소엔 언제 마님의 호출이 있을까 조바심하느라 제대로 감상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자유도 3-4 일 지나면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널널한 자유를 온전히 즐기기가 힘이 든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에리히 프롬'이라는 유명한 사회학자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을까?
자유가 없을 때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그 자유를 어찌할 줄을 몰라
다시 자유로부터 도피를 원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살아가는 일이 그런 것 같다.
특히 결혼 생활이.
결혼 생활은 부부가 한 다리씩 묶고 달리는
2인 3각과 같은 것이다.
서로 한 다리를 자발적으로(굉장히 중요하다) 묶었으니
그것은 스스로 일정 부분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보조를 맞추고
마음을 맞추다 보면
서로 격려하며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 부르는 솔로도 아름답지만
둘이 부르는 듀엣도 솔로만큼,
아니 솔로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일 마치고
저녁을 지어 먹은 다음,
이차크 펄만과 존 윌리암스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듀엣 곡을 들어야 겠다.
이차크 펄만은 바이얼린을,
존 윌리암스는 기타를 연주하며
서로 다른 멜로디를 노래할 것이다.
둘이서 서로 다른 멜로디를 연주하지만
다른 음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그 화음은
지상에서 맛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열락을 제공한다.
마님이 안 계시는 동안
난 자유를 온전히 즐길 것이다.
그 자유에서 도피하려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만끽하다가
마님이 돌아 오시면
자발적으로 나의 한 다리를 마님의 한 다리에 묶을 것이다.
삶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
난 오늘도 밥을 짓고 또 자유를 누리며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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