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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또 하루 살아냈다

겨울이 내 주위로 슬며시 끼어들라치면

언제부터인지 슬슬 엉덩이를 밀어 옆으로 피하게 된다.

이제는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친구가 겨울,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오는 추위다.


하기야 나에게도 피가 끓는

푸른 시절이 있었다.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던 강원도의 철책선에서

군대 생활 할 때이다.

단열재라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별돌로만 지은 소대 막사에서 생활을 했다.


막사 중간에 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 학교의 교실에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석탄을 땠고

우리는 장작을 패서 난로의 불을 지폈다.


그런데 그 난로라는 것이 추위 앞에서는 영 맥을 못 추었다.

난로가 위치한 천장 위만 동그란 형태로 멀쩡했고

그 나머지 소대 막사를

성에가 아름답게 도배를 했다.


성에 무늬가 있는 순백의 벽지로 도배된

겨울왕국에서 우린 하루하루를 지냈다.


나는 막사 입구에 칸을 막아 만든 소초장 실에서

그 겨울을 지냈는데

블록 한 장으로 그 황당한 겨울의 추위와 대치를 했다.

순찰을 돌고 남는 시간엔

그 소초장 실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벽과 천장을 빼곡하게 채운

성에꽃을 친구 삼아, 

애인 삼아 지냈다.


지금도 그 겨울을 생각하면

추위는 쏙 빠지고 희디흰 성에의 결정만이

부조처럼 떠 올라 그겨울의 처절하게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들고는 한다.


이젠 피도 식은 모양이다.


눈도 

추위도 

겨울이 가진 이미지는 다 성가신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아름답지도 않고 불편할 따름이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몸의 피가 식은 까닭도 있지만

추위때문에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다.


연전에 우리 세탁소의 세탁 기계와 수도관이

추위 때문에 얼어서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경비도 경비거니와

보일러가 작동을 하지 않으니

일도 못 했을 뿐 아니라

반나절을 추위에 떨었던 기억은

겨울이나 추위란 단어와 함께

각설이 타령에서처럼

죽지도 않고 꼬박꼬박 날 찾아온다.


이번 새 해 첫날을 끼고 이틀 동안 세탁소 문을 열지 않는 동안

강추위가 찾아 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강추위는 계속되고 있다.)


몸은 뉴 저지 집에 있어도

마음은 부르클린의 세탁소를 오락가락 했다.

잠도 설쳤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집에서 이틀을 지내고

새 해 아침 식구들끼리 세배를 마치고

서둘러 부르클린의 세탁소로 나왔다.


세탁소의 이상유무를 확인 하고

보일러를 두어 시간 작동을 시켜

실내 온도를 높이려는 심사였다.


게이트를 열고 세탁소 안으로 들어섰다.

입김을 내 뿜었다.

입김이 나오지 않았다.


-아 안심이다.-


그러나 그 안심의 상태는 1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보일러의 스위치를 올렸더니

물 펌프가 1 초 정도 돌더니 스스로 꺼지며

보일러 전체의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다.


맥이 풀렸다.


새 해 첫날이어서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세탁소 문을 내리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마음이 불편하니 아주 따뜻한 아파트 안에서도

추위에 포위 당한 느낌이었다.


아내에게 말도 못 하고

그 날 밤을 눈을 뜨기도 하고 감기도 하면서 세웠다.

눈을 감았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세탁소로 향하는 발길은

성경에 나오는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어린 양'의 그것과 같았다.


세탁소 안은 영상인 것이 분명했다.

입김이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보일러 실 안도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스위치 박스 안의 퓨즈를 갈아 보았지만

보일러는 시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 잘 아는 기술자 몇에게 전화를 했지만

모두들 정신 없이 바빠서

그 날은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대답만이 되돌아 왔다.


구원의 손길이 끝난 시간,

바로 내 앞에 25 시가 벽처럼 나를 막아섰다.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지옥은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의 길이 닫힌 곳, 

그리고 그런 시간.


그런데 구원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왔다.


추위 속에서 하릴없이

오는 손님을 맞고 보내며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출근한 직원 하나가

보일러를 둘러 보더니 물 펌프가 언 것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보일러 실 안이 입김이 나지 않을정도로

비교적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잊은 것이 있었는데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보일러 실 안으로 공급하는

8 인치 연통이 있는데 그것을 막지 않은 것이다.


바깥의 찬 공기가 들어와 

바닥에 있는 물펌프 속의 물이 살짝 언 것이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전열기를 동원해

30 여 분 동안 물 펌프 주변을 녹인 후

보일러 스위치의 퓨즈를 새 것으로 갈아 끼우고'

전원을 올렸더니

아, 보일러가 힘차게 작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멈추었던 내 심장도 

다시 뛰는 것 같았다.


-아! 살았다!-


새 해 첫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삶은 근본적으로 허무한 일인 것 같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 살 것,

그리고 살아낼 것.


첫날 해가 무심히 떠 올랐다.


그렇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올해도 그저 무심히 살자.'고.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881


2018 첫 날, 첫 해를 기다리며

마음의 고향 Piermon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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