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머리를 한 두 여자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가장 따뜻한 색 불루
1.
"Nicki가 맡긴 옷 좀 찾으러 왔는데요."
남자 복장에 가까운, 그러나 여자임에 분명한 사람이
어느 날 세탁소에 찾아왔다.
"옷 맡긴 영수증을 가져오셨나요?"
"아니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영수증도 없이 옷을 찾으러 왔으니
내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옷을 잘 못 내 주었다가
큰 낭패를 보았던 경험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화 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 *** ****인데요."
콤퓨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그 손님의 거래내역이 화면에 뜨는데
분명 Nicki의 번호는 맞는데
찾으러 온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잔뜩 의심이 묻어나는 말투로 물었다.
"Nicki와 어떤 관계시죠?"
그녀로부터 돌아 온 대답에
잠시 멍했다.
그녀는 "I'm her fiance."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녀가 Nicki의 약혼자라는 말을 하면서
그 태도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오히려 내가 얼떨떨한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그녀에게 Nicki의 옷을 내 주었다.
Nicki는 변호사로서
20 대 후반에서 30 대 초반의 아주 활달한 여성인데
늘 바쁘게 산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에
나는 그녀를 만나면
"당신은 그렇게 예쁘고 능력도 있는데 너무 바빠서 결혼할 시간도 없는 거지?"라는
농담을 버릇처럼 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그녀를 만나도 결혼 이야기는 입 안에 꼭 닫아두고
날씨 이야기만 한다
2.
Tom은 아주 까칠한 남자 손님인데
얼굴이 희고 키가 훤칠하다.
옷은 내가 이름도 모르는 비싼 브랜드만 입는다.
어느날 호기심으로 그가 가져 온 셔츠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셔츠 한 장 값이 무려 475 달러나 되었다.
그러니 그가 셔츠 몇 장 맡기면
그 셔츠 값이 몇 천 달러에 이른다.
그 손님이 옷을 세탁소에 맡기는 게
머리 조아릴 만큼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 부담 또한 막중해서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사실 Tom에게는
세탁비 이외에 심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수당도 꼬박꼬박 챙겨 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입 안에 넣어둔 채 꺼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청년이
Tom의 옷을 찾으러 왔다.
물론 영수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전화 번호를 확인했더니 Tom의 것이 맞았다.
본인이면 모르겠는데
낯선 청년이 Tom의 옷을 찾으러 왔으니
내 의심의 촉각이 날카로와질 대로 날카로와졌다.
옷을 엉뚱한 사람에게 내 주었다가
몇 천 달러에 해당하는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확인을 하기 위해 Tom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 얼굴 모르는 청년이 옷을 찾으러 왔다고 했더니
"Don't worry, he is my husband."라는 대답이
전화기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왔다
옷을 찾으러 온 손님이 자기 남편이 맞으니
걱정말고 그에게 자기 옷을 주라고 했다.
그 청년이 들고 온 신용카드도 Tom의 것이 맞았다.
나는 남자 동성애자들이
서로를 남편(husband)이라고 하는 줄 처음으로 알았다.
3.
연전에 'Blue is the warmest color(가장 따뜻한 색, 불루)'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델이라는 한 고등학생 여자 아이가
몇 살 위의 여자와 동성애에 빠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다.
처음 서로가 스치고 지나칠 때
주인공의 파트너였던
연상의 여인은 머리에 파란 물을 들이고 있었고,
둘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아델의 머리도 파란색 물이 들었다.
둘이 사랑을 하는 동안은
옷도 배경도 푸른 색 일색이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이별이 찾아오고
아델의 머리에서도, 그녀의 파트너의 머리에서도
푸른색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는 동안은
둘 사이를 감싸고 있던 푸른 색이
그런 의미에서 가장 따뜻한 색이었을 것이다.
작년 1 월 포루투갈의 리스본에서
젊은 여자 둘을 스치고 지나갔다.
둘 다 머리를 녹색으로 물을 들이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동성애에 대한 별로 생각이 없다.
단지 참 많은 동성애자들이
내 주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것은 동성애가
옳다거나 그르다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라는 사실 하나는 명확하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나와 함께 이웃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1 년 전 리스본에서 지나쳤던
두 여인의 머리는 아직 녹색으로 남아 있을까?
아직도 그렇다면
두 여인에게는 'Green is the warmest color'가 될 것이다.
마치 아델에게 푸른 색이 가장 따뜻했던 것처럼----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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