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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블랙 벨트의 귀환

아들 둘이 집에 돌아왔다.


딸 셋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그리 심리적인 거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들은 다르다.


큰 아들은 워싱톤 디씨에,

막내 아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멀리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운전을 해서 가면 

큰 아들은 네 시간 반,

작은 아들은 열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 있다.


큰 아들은 대학 졸업을 하고

일년 반 정도 뉴욕에 살았던 기간을 빼고는

학부시절 4 년, 직생활 3 년, 그리고 로 스쿨 2 년 반을 더하면

거의 10 년이라는 생활을 워싱턴 디씨 지역에서 보냈다.


그리고 로 스쿨 마지막 학기는

영국의 런던에서 할 예정이어서

아예 방을 빼서 모든 짐을 트럭에 싣고

워싱턴에서 철수를 했다.

(1월 초에 영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5월 졸업식이 끝나고

뉴욕에 본부를 둔 로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다.


막내는 지난 3 년 간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패리스 아이랜드의

해병 훈련소에서 DI(Drill Instructor)로 근무하고 있다.

신병 훈련기간이 석달인데

모두 일곱 번의 사이클을 끝내면

DI로서도 졸업을 하게 된다.

워낙 체력적으로 힘든 극한직업이어서

더 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뭘 잘 했는지

막내 아들이 이 번에 블랙 벨트를 받았다.

보통 DI들은 그린 벨트를 매는데

막내 아들은 특별히 블랙벨트를 매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다른 특전없고

사진을 찍을 때 블랙 벨트를 차고

가운데 선다는 것 뿐이란다.


아무러면 어떤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할 일을 성실히 한 결과로 얻어진

블랙 벨트는 그 자체로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어릴 적엔 태권도도 열심히 해

큰 아들은 블랙 벨트 4단,

막내 아들은 블랙 벨트 초단이기도 하다.


이렇게 블랙 벨트를 두른 아들들을

내가 아들, 혹은 아들놈이라 하지 않고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면서

우리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겐 블랙 벨트가 없다.


블랙 벨트 하나 없이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뭘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블랙 벨트가 있는  자식들을

다섯이나 키웠으니 

아빠로서 블랙 벨트 5단은 되지 않을까?


태권도에서는

블랙 벨트 5단부터는 "매스터'라는 칭호가 붙는다.

5 단부터는 그만큼 명예롭고 존경 받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내게는 20 년도 넘게 차고 다니는 

브라운 벨트가 있는

닳고 닳은데다가 하나 있는 고리도 떨어져 나갔다.


이 참에 나에게 주는 새해 선물로 

검은 가죽 벨트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다.

검은 벨트를 매고

새해 첫 날 아침 아이들 가운데 서서 

블랙벨트 5단, 자칭 매스터인 

이 아빠의 위엄을 천하에 한 번 드러내 볼까나.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879






막내 아들 검은 벨트.






태권도 초단 단증.





20 년도 넘게 맨 브라운 벨트

검은 띠로 승단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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