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0 년 간
병원 한 번 다녀오지 않았다.
침을 맞으러 한의원은 다녀온 적은 있어도
특별히 아픈 적이 없었고
미련한 일인지는 몰라도
정기검진을 받은 적도 없다.
이런 것도 축복이라면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릴적 할아버지께서는 늘
'밥이 보약'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세 끼 밥을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잘 먹는다.
그렇게 잘 먹는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거의 지지 않았다.
약도 거의 먹는 것이 없다.
우리 나이 또래 친구들을 보면
혈압이나 당뇨약 등을 챙겨 다니는 사람이 꽤 많은데
나는 그런 면에서 아주 자유로운 편이다.
그런데 약을 먹어야 할 기회(?)가 생겼다.
아내가 동생 부부가 선물로 보냈다며
비타민을 받아왔다.
그걸 나에게 전량 떠 맡기며 먹으라고 했다,
자기는 괜찮으니
남편 건강이 우선이라는
갸륵하고도 아름다운 남편 사랑의 붉은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비타민을 나에게 떠 넘기고 아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걸 먹으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사이처럼 세탁소가 한가 할 때는
피로할 일 전혀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해도
아내는 가게에서 먹으라며 도시락 가방에
비타민을 밀어 넣었다.
무려 세 알의 약을 하루에 두 차례씩 먹어야 하는데
그 것이 나에게는 스트레스다.
내가 그리 성실하거난 부지런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데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엔
더더욱 게을러진다.
격언 중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게 있는데
내 식대로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내일 해도 될 일을 오늘 하지 말자'
환자도 아니고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하루 두 차례 씩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살짝살짝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지 멀쩡하고
정신도 건강한데
약을 먹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없는 병도 생겨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오로지 약을 챙겨준 사람의 마음 때문에라도
아주 성실하게
한 달 동안 한시적으로
성실히 비타민을 섭취할 것을 결심한다.
선물할 때도 선물 받을 사람을 보고
선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즐거운 약먹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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