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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Mexican Hat, 그리고 풀꽃

Monument Valley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Mexican Hat이라는 곳이 있다.

Mexican hat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은

높이 18 미터에 달하는 바위 때문인데

멕시코 사람들이 쓰는 챙 넓은 모자(Sombrero라고 함)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는 걸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6-7 전에 한 번 지나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큰 길 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차에서 창문을 내린 채 아주 게으른 사진을 한 장 찍는 걸로

그 곳 방문을 대신했다.

길에서 언뜻 보니 역광 때문인지 뿌옇게 보여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 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번 여행에서는

좀 천천히 둘러 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가까운 곳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 곳까지 길은 나 있었지만 

길 위로 돌들이 삐주삐죽 나와 있는데다다

도로 포장이 안 된 까닭으로 

마치 어린 시절 소독차가 지나갈 때처럼

차 뒤로 먼지가 일었다.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에 

운전하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조금 가다 보니

작은 공터가 보였다.

거기에는 돌을 쌓은 화로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불을 땐 흔적이 있었다.


아직 식전이어서

우리는 그 위에 '부루스타'를 얹은 뒤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Utah 주 사막 한 군데서 먹는 라면 맛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면을 먹고 나서 

우리는 Mexican Hat 주변의 탐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머문 곳에서는

큰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였다.

멀리 강물이 흐르는데

녹색의 시간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강 옆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들판에는 풀들과 또 그 풀들이 피워낸 꽃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거렸다.


그야말로 에덴이었다.


그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급한 굽어진 비탈길을 내려가야 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않는 곳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 곳에서 보는 Mexican Hat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먼지에 싸인 뿌연 모습이 아니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력적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참으로 당당해서

마치 Elgar의 행진곡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냥 큰 길 가에서 창문을 내리고 만났던

Mexican Hat관 영 다른 모습을

만난 것이다.


툴툴거리는 차를 운전하며 

먼지를 마셔야 하는 수고로움을 통해

우리는 Mexican Hat의 

새롭고 산뜻한 모습과 만날 수 있었다.


살아가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역광 때문에

먼지 때문에

우리가 Mexican Hat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겉만 보고서

다른 이의 참 모습,

진실 아름다움을 보지 못 하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아침 한 때를 보내고

돌아나오는 우리 차 뒤로 뽀얀 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들여다 보면

스스로 드러나는 

참 모습,

참 아름다움.


Mexican Hat처럼 넓은 모자의 챙 때문에

그 사람의 참 얼굴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Mexican Hat을 지나

큰 길로 들어서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읊조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 다 아름답게 태어난

'풀꽃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


(자세히, 

천천히

그대를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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