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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바닷가 에서 받은 생일 카드




내 생일은 음력 9월 1 일인데

호적에 음력으로 생년월일

기재된 까닭으로

10 여년 전까지도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생일을 지내야 했다.


나 어릴 적 친척 할머니들은

달력을 보시지 않아도

음력으로 기억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삿날이며

누구누구의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알아내는 용한 재주들을 가지고 계셨다.


나같이 그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귀찮고 번거로운 사람에게

음력과 양력을 두루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만약 내가 내 스스로 내 생일을 챙겨야 한다면

그런 과정이 귀찮아서

생일 자체를 없는 걸로 치부하고 살 것 같다.


나야 생일을 지내도 그만, 

아니어도 별로 섭섭해 하지 않는

그렇고 그런 사람인데

아내는 그런 나의 사고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결혼하고 부터

아내는 내 생일이면

좋아하지도 않는 미역국을 끓이고,

예쁜 생일 카드를 골라 카드보다 예쁜 글씨로

축하의 글을 빼곡하게 채운 뒤

초콜렛까지 하나 첨부해서

점심 도시락을 건네준다.


그러다 보니

나의 탄생이 예사롭지 않은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자라게 되었다.


내가 존귀해야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아내며

아이들도 소중한 존재가 됨을

아내가 나의 생일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 10 여 년 전에

아내는 결단을 내리고

매 해 음력을 양력으로 따져서 지내던 내 생일을

양력 10 월 23일로 정해서

식구들에게 '아빠 탄신일'로 선포를 했다.


아이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음력으로 1957 년 9 월 1일이 양력으로 치면 

10 월 23 일이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올 해 10 월 23 일

나는 60 살 생일, 환갑을 맞았다.

실제로 음력 9 월 1 일을 양력으로 환산한다면

올 해는 어는 날이 생일인지 모르겠다.


주변의 누군가가 참으로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같은 날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날짜를 따지는 데 너무 야박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환갑을 맞는 올 해 내 생일은

우리 식구는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

태평양에서 맞이하기로 했다.


그것은 해가 뜨는 대서양에서

해가 지는 태평양까지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받아

아이들이 그 곳으로 오겠다는 제안을 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10 월 21 일 캘리포니아의 산타 모니카 바닷가에서 만났다.


우리 부부는 10 월 7 일 뉴욕을 떠나

운전을 해서 그 곳에 도착했고,

막내 아들만 빼고 네 아이와 사위 둘, 그리고 손주 둘은

비행기를 타고 하루 이틀 전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우리는 토요일인 21 일에 조촐한, 

그러나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생일 잔치를 했다.

일정 때문에 22 일에 돌아가야 하는

큰 딸 네 식구들 때문이었다.


22일 아침 큰 딸네 식구가 떠나고 난 뒤 

남은 식구들끼리 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떠나는 날 23 일 아침,

새벽에 바닷가로 나갔다.

내 생일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해가 떠 올랐다.


나의 새로운 한 평생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회에 젖은 채,

발길을 돌리는 순간

바닷가 모래 위에 아이들이

생일카드를 그려 놓은 것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토요일, 우리가 모두 만났을 때부터

함께 지냈던 시간 동안 찍은 사진으로 채워진 액자가

모래 위에 그린 하트 모양의 카드(?) 가운데

촛불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별한 액자가 있었는데

그 액자 안에는 말린 풀꽃들이 들어 있었고,

그 풀꽃 옆에는 그 풀꽃을 만났던 장소가 적혀 있었다.


아냐는 우리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풀꽃 한 송이씩을 꺾어서

노트북 갈피에 끼워서 말렸다.

그 노트북은 우리 부부가

매일 서로에게 쓰는 '사랑의 편지'가 담겨 있는데

여행 중에도 빠지지 않고 채웠다.


아내는 평소에도 

내가 보기에 '쓸 데 없는 짓'을 잘 하는데

꽃을 따서 말리는 것도

그런 쓸 데 없는 짓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내의 '쓸 데 없는 짓'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생일카드로 내게 돌아 올 줄은 몰랐다.


나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시간들이

그 액자 안에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사진이지만,

그리고 마른 풀꽃이어서 생기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함께 했던 시간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는 그 액자를 볼 때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순간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

그 장소는 

세월이 많이 흘러도

고스란히 액자 안에 남아서

내가 바라보기만 하면

그 날, 그 곳의 이야기를 아주 선명하게 들려줄 것이다.


사진과 풀꽃이 들어간 액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내 예순 살 ,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오늘 아침 

생일 선물로 받은 액자들을 들여다 보며

아름다운 시간들과 함께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또한 내 식구와 이웃 또한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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