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였던가?
벌써 기억이 희미해진 탓으로
그 날 아침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르겠다.
유타 주의 어느 곳인가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길 가의 도로 표지판에 브라운 색이 보였다.
유명한 곳, 혹은 사적지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미 그 표지판을 지나쳤지만
뭔가 그 곳이 스파이더 맨의 거미줄처럼
우리를 끌어 당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을 뒤에 붉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아주 신령스런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침 햇살이 바위산의
정상 부분에 내려 앉았을 때의
그 신비스러운 느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곳을 찾기로 했다.
우린 늘 이런 식이다.
동네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그리고 요즘 말로 필이 꽂히면
가던 길을 돌아 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무조건
간다.
가던 길 얼마를 더 가서 차를 돌린 뒤 그 마을을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길 위를 달리는 차가
아주 드물게 눈에 띄었다.
그 동네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동네 주민이 300 여명 정도 될까?
Visitor Center를 지나고,
교실이 두 세개 있을 법한 단층 건물의
초등학교도 지나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큰 길에서 서 너 블락 들어오니 바로 마을의 끝이었다.
Bluff Port라는 안내소를 겸한 곳 빼고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었다.
왼 쪽으로 차를 돌리니
어느 집 앞에 무성한 나뭇잎을 입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아래 벤치가 하나 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는 책장 같은 것이 하나 서 있었다.
나무 밑의 벤치라면 낯 익은 풍경이지만
길 위의 책장은 뭔가 새롭고 낯선 소품이었다.
차를 세우고
책장 안을 들여다 보았다.
책장 안에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쉬라고
누군가가 마음을 써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책장 아래에 작은 칠판이 하나 있었다.
책장 안에는 엽서 크기의 메모가 있었다.
메모의 내용은
칠판에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메세지를 전해보라는 것이었다.
책장 안에는 색분필도 있었다.
그걸 아내가 찾아냈다.
그리고 칠판에 꽃 그림과 함께
생일축하와 사랑한다는 메세지를 적어 채웠다.
외부 사람들은 알 턱이 없는곳의 작은 칠판에 적은
사랑과 축하의 메세지.
한국 사람으로 거기에
메세지를 채워 넣은 것은 아마도 아내가 처음일 것이다.
외부 사람들 중 누가 그 끝길까지 갈 것이며,
그렇지 않아도 바쁜 여정에
부러 차를 세우고 내려서 책장을 열어 보았을까?
그리고 책장 안의 알림판을 찬찬히 읽고
칠판에 글과 그림을 그려 넣었을까?
그것은 관심과 사랑이다.
또 그것은 그 책장과 칠판을 만들고
분필까지 준비해 둔 사람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내의 마음과
나의 그것이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름도 모르는
지구의 어느 외딴 곳에서 받은
생일 카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그 칠판 위에
아내가 쓰고 그렸던
생일 카드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가 이미 그 것을 지우고
새로운 사랑의 글을 적어 놓았길 소망한다.
이런 과정이 이미 여러 번 반복되었길 바란다.
사랑의 메세지가
알지도 못 할 누군가에게서
또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끊임 없이 전달되면 참 좋을 것 같다.
아내가 칠판에 쓴 생일카드가
그 칠판에서 지워졌어도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마음을 써서 칠판을 책장 아래 매 달아 둔 사람에게
색색깔 예쁜 분필로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또박또박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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