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away Beach에서 떠 오르는 아침 해를 만나고
아파트로 돌아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드디어 벼르고,소망하던
길을 떠날 시간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수 백, 수 천 갈래의 끈이
나를 묶고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 끈 하나하나는
내가 길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었다.
그걸 미련, 혹은 걱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럴 때마다 난 나의 죽음을 떠 올리곤 한다.
내가 죽음의 길을 떠날 때
뒤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
아무 것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한가지의 길,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따를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연습,
죽는 연습을 평소에 한다.
이 번 여행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정하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뒤의 것을 버리자
앞에서 갈등과 혼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은 선택 앞에서
자꾸 흔들리게 된다.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사람을 보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내 혼자의 방식대로 길을 택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윌리암스버그 다리를 건너
홀랜드 터널을 지나서
80 번 길로 접어드는 코스를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동행하는 아내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슬그머니 물었더니
GPS에 맡기잔다.
GPS에 모든 걸 맡겼더니
미드 타운 터널을 지나
맨하탄을 관통한 뒤 링컨 터널을 지나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미드타운 터널로 가는
길이 아수라장이었다.
차들이 빼곡하게 선을 이루었고
일 분 걸려 일 미터씩 전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무언가 우리의 결정이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았다.'
미드 타운 터널은 물론이거니와
맨하탄 도로가 거의 붉은 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날 맨하탄에서 한인들의 퍼레이드가 있었다.)
그렇게 미드 타운을 건너기 전에
점심 시간을 맞았다.
차 안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내가 옆에 앉아서 싸 주는 김밥을
받아 먹었다.
미드 타운 터널중
퀸즈로 오는 방향은 도로 공사를 하느라
닫혀 있으니
맨하탄 방향의 두 차선을
양쪽 방향의 차들이 나누어 쓰게 되어서 여간 혼잡스러운 게 아니었다.
가는 길에 도로 옆 간판이 눈에 띄었다.
평소엔 보지 않고 지나다니던 간판이었지만
차가 정지 상태에 있는 지라
심심풀이 삼아 정성껏 읽어 보았다.
'Speeding is a leading cause of traffic deaths'
과속이 자동차 주행 중 사망의 주된 원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차가 서 있으니 망정이지
달리는 차에서 어찌 저 간판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 간판을 읽다
한눈을 파는 사이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간판의 효율성을 위해서
그 간판 앞에 'STOP' 사인이라도 설치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정지 후, 그 간판을 찬찬히 읽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 길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삶의 아이러니.
삶의 아이러니를
나는 길에서 배운다.
내 자신도 그런 아이러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겨우 미드 타운을 건너자
맨하탄 또한 혼돈 상태였다.
너 덧 차례 신호가 바뀌어야 겨우 한 블락을 지날 수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링컨 터널로 접어들자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해진 차선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니
따로 마음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이 막히고
도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질 때
온갖 번뇌가 일어나는 법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꼭 필요한 하나만 있으면 될 것을
둘 셋, 그 이상이 있어서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말씀.
그렇게 링컨 터널을 지나
80 번 도로에 들어서니
집을 떠난 지 3 시간 반이 지났다.
그 동안 지나 온 거리를 보니 고작 15 마일이 조금 넘었다.
기껏해야 3,40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 시간 30 분이나 걸려 도착한 것이었다.
세상살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그 힘 빠지는 겸손함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길은 길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표지판
Speeding is a leading cause of traffic deaths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에서는 읽을 수 없고
속도 때문에 사고가 나서죽을 일이 없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읽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
맨하탄에 들어서도
교통상황은 마찬가지.
코리안 퍼레이드 때문에
차들이 조류에 휩쓸린 듯,
이리저리 부초처럼 길 위를 떠 다니는 것 같았다.
앞 쪽으로 보이는 것이
'Eataly'라는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세들어 있는 Flat Iron Building.
Tour Bus 위의 풍경.
차가 밀려도 그것이 관광의 목적일 땐
그저 즐겁고 행복한 것을---
어디에 몇 시 꼭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행복을 앗아간다.
링컨 터널 한 길로 통하는 길에 접어들며
느끼는 안도감.
또 다시 길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여러 갈래 길에서 헤매다
마침내 가야 할 길을 찾아서
그 길을 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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