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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여기저기

Norwalk CT. Calf Pasture Beach의 일출-바다에서 추억을 낚다

바닷가의 일몰을 보고 난 후에

호텔에 돌아와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잤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4 시가 채 안 되어 눈을 뜨고

또 축구까지 한 뒤라

밀려오는 피로가 나를 감싸 침대에 쓰러뜨렸다.


죽었다 깨어난 것이 새벽 다섯 시 쯤.


눈꼽도 떼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 눈을 감고 있는 시간에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흔치 않은 마음 떨림을 경험하게 한다.


어둠을 가르고 빛이 나타나는 

그 쫄깃한 긴장의 순간을 만나는 것은

조물주의 천지창조의 순간을

축소해서 경험하는 일이다.


따라서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묵고 난 후엔

늘 하는 통과제의(Passage Ritual)의 하나로

뜨는 해를 맞이하곤 한다.


그리고 그 날의 일출은 두고두고

내 마음 속의 등대가 되어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지면 불을 밝혀주곤 한다.


Calf Pasture Beach는 

호텔에서 10 여 분 거리에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 세대의 이주민들이 목장을 하던 곳이라 그런지

바닷가로 가는 도중 길 옆에 너른 풀밭이 보였다.


바닷가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닫혀 있었다.


마침 눈에 띈 곳이

해변 공원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넓은 풀밭 옆의 작은 파킹장이었다.

그 너른 풀밭 위에서

동네 사람들은 자기가 기르는 개를 끌고 나와 운동도 시키고

이웃 개들과 play date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도 한다.

물론 개주인들끼리의 수다가 주목적이긴 하지만----


마침 이른 시간이어서 빈 자리가 있었다.

차를 대고 길을 건너니

둔덕 너머 하늘이 보랏빛으로 황홀하게 눈짓을 했다.


가슴이 쿵쾅댄다.

60 년 묵은 심장이 아직 이리 뛸 수 있음은

오로지 아침 첫 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긴장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책 제목을 따서 

나의 어록에 하나를 얹는다.

(책 제목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기대감은 묵은 심장도 뛰게 한다."


언덕을 뛰어 올랐다.


발그스름한 얼굴로 해가 막 수평선을 넘고 있었다.


멀리 신화처럼 등대도 보였다.

해변엔 미역이 검게 흩어져 있었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 쯤엔 갈매기며

두루미 같은 새들이 일찌감치 먹이를 찾아

연신 부리를  물 속으로 쪼아대고 있었다.


해가 수평선 위로 훌쩍 솟구쳐서

바로 앞의 섬의 나무들 위로 얼굴을 내밀 때는

이미 보랏빛의 황홀함이 사라진 뒤였다.


나는 천천히 모래 위를 걸어

해변 끄트머리계 있는

낚시를 위해 만들어진 Pier까지 걸었다.


거기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와 그 아이의 아빠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Any good news yet?"

내가 물었다.


"Not yet."

그 때까지 아무 것도 잡지 못했지만

기대감 그득한 목소리로

아빠가 대답했다.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낚시에 열중했다.


그날은 아이의 생일이었다.

아들과의 추억을 위해 개학 전에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 전 날엔 몬트리얼에 갔었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나는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비록 고기는 못 잡을지라도

적어도 아름다운 추억 하나는 낚을 수 있을 거라고-----


아무리 큰 물고기를 잡을지라도

그 물고기는 머지 않아 그 물리적 형체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날 아침 햇살을 맞으며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 아이의 가슴 속에 남아 

때때로 어둔 시간을 만나면 등대처럼

그의 마음을 밝혀줄 것이다.


마침 햇살은 저 건너 바다 위에 떠 있는

등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