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독신 일기 - 횡설수설 2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739


오늘은 월요일.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 - 공휴일이다.

굳이 한국어로 옮기자면 현충일이다.

누군가 사회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


그리고 바베큐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구약시대에도 제사를 지낼 때

동물을 불에 태워

연기를 하늘로 올렸다.

그래서인지 메모리얼 데이의 다른 이름은 바베큐 데이다.


나는 감옥에 있는 대자 면회를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새벽 두 시 반에 깼다가 

다시 선잠을 자고 눈을 뜨니

4 시 반.


자리에서 일어 났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했다.

그리고 로션을 발랐다.


대자의 어머니와 만나기로 약속장소가 있는

맨하탄 5 애비뉴로 향했다.

비가 제법 세차게 뿌렸다.

빨간 불 신호등 앞에 멈추고 

와이퍼를 멈추었다.

유리창 빗방울 사이로 번지는 불빛이 몽환적이었다.


똑딱이 카메라로 몇 장을 찍었다.

(그러나 카메라엔 메모리 카드가 없었다.)


살아가는 일이 그런 것 같다.

무언가 찍은 것 같은데 

남은 것은 없는-----


새벽부터 삶의 허무를 만났다.

다시 와이퍼를 작동시키니

창에 붙은 빗방울들이 허무하게 흩어졌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와이퍼를 작동시키면 바로 사라지는 

빗방울 같은 삶.

오늘은 빗방울 때문에 아침부터 허무와 어깨동무 했다.


아침 여섯 시.

만나기로 한 대자의 어머니는 제 시간에

나타나지않으셨다.


마음과 마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내 생각 같지 않아서 또 다시 허무해졌다.

6 시 20 분을 출발 데드라인으로 정했다.


주룩주룩 허무하게 내리는 빗속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리라.


대자의 어머니가 6 시 20 분에 출현함으로

무소의 뿔처럼 가리라는 나의 허무 결심은

와이퍼에 씻긴 빗방울처럼 산산히 흩어졌다.


임시로 독신 상태가 무너졌다.

대자의 육신이 가두어진 감옥까지의 거리는

대략 1 시간 30 분.

비가 내리는 걸 감안하면 도착 시간은 오전 8 시 전후가 될 것이다.


그 한 시간 30 분 동안

난 대자 모녀가 처한 딱한 사정을 청취해야 했다.


내가 그의 참된 피난처가 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대자와 대부의 인연을 맺었는데 

앞으로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빗방울에 섞여 내리는 것 같았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지만

내 마음은 갈대보다 더 연약하다.


감옥 입구는 비교적 한산했다.

20 여 분 기다려서 감옥 안의

면회실로 갈 수 있었다.


4 개의 철문을 지났다.

하나가 열리고 닫혀야 비로소 다음 문이 열린다.

감옥의 문은 동시에 열리는 법이 없다.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대자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아서

다른 쪽 철문에 대자가 모습을 보였다.

내가 면회를 다닌 이래 가장 빨리 만난 기록이었다.


대자는 나만큼 독신생활에 젖어서

능숙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대자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싶어 하셨다.

면회실에는 햄버거와 음료수, 그리고 포테이토 칩과 같은 

음식과 군것질 거리가 들어 있는 자판기 대 여섯 대가 있었다.


나의 대자는 아침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새벽 네 시 반 기상.

대자의 어머니는 아침 여섯 시 기상.

대자는 일곱 시 쯤 기상했을 것이다.


대자는 열 몇 살에 감옥에 들어와 

지금까지 26년 동안 독신생활을 했다.

독신은 자기 몸 하나 돌보면 되니

자연 자기 중심적 감옥이라는 또 하나의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


자기 중심으로 보면

당장은 아침 생각이 없겠지만

이른 새벽 잠을 설치고 온 우릴 생각한다면

같이 뭘 좀 먹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아주 지나치게 내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씩, 아니 자주 독신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중심적 사고의 자유를 침해 당할 때이다.


"여보 당신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아니. 오후에 커피 마시면 난 밤에 잠을 잘 못 자겠어."

"당신 생각만 하지 말고 나한테 먼저 커피 마시겠냐고 한 번 물어와요."


아내가 커피 마시고 싶을 때 

나에게 거는 수작의 대표적 유형이다.


커피 마시고 싶으면 혼자 마시면 될 걸

왜 나를 끌어 들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배려라는 미명으로 

나를 훈육하고 교육한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길은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가.


아내의 훈육은 제법 약효를 발휘해서

때때로 내가 전혀 커피를 마실 생각이 없을 때에도

아내에게

 "나 커피 한 잔 하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

라고 빈말로 물어 보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생각이 없다가도 커피를 마셔준다.


"마시고 싶지 않아도 정성이 갸륵해서 "라는 단서를 달면서 말이다.


나의 독신주의적 자유로움은 

이제 변질될대로 변질되었다.


아 그리운 독신.


나의 대자는 언젠가 감옥에서 나올 것이다.

그 때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른 사람도 생각해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나답지 않게 배려라는 제목으로 훈육을 했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뉴 저지로 돌아 오는 방향을 잡았다.

대자의 어머니께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고등어 구이와 된장찌개를 드시던 기억이 나서였다.


한시적인 독신이 내가

이미 독신이 되신 대자의 어머니가 함께 하는 한 끼의 식사.


집에 돌아 오니 

큰 아들의 메세지가 왔다.

아파트에 5 시에서 5 시 반 정도 도착할 예정이란다.


큰 아들은 워싱톤에서 회사를 3 년인가 다니고

로 스쿨  2년을 마쳤으니

대학 졸업후 5년의 독신 생활을 성실히 가꿔왔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상대방 배려의 화신이다.

그러니 나와는차원이 다른 독신이다.


우리 큰 아들은 어릴 적부터 국수 귀신이라고 불릴 만큼 

극수를 사랑하는 국수주의자이다.

그래서 내가 집에 들어서는 아들에게 선제 공격을 했다.


"오늘 저녁 짬뽕 어때?"


국수주의자인 아들을 확실하게 행복하게 해 주는 방도중 하나였다.

아들의 입에선 미소와 함께 '대박'이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6일 차 독신과 5년 차 독신이 함께 앉아

짬뽕과 짜장면으로 독신결의를 맺었다.

내 짜장면의 일부를 덜어서

아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나의 독신주의자적인 미학은

오늘로 빛이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무소의 뿔은 무슨 무소의 뿔.

개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기가 너무 힘들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요일 잡설  (0) 2017.06.05
독신일기 - 흙수저도 없어서  (0) 2017.06.02
독신일기 - 횡설수설  (0) 2017.05.29
때론 돌아서, 때론 멈추어 서서 2  (0) 2017.05.25
가족 사진 - 20년 , 그 세월  (0) 2017.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