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자유로움도 거의 끝이다.
어제 저녁은 아들을 위해 부대찌개를 끓였다.
요리하고는 별 친근한 관계가 없지만
부때찌개 정도는 한 번 끓여볼 만하다는
나름의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재료 자체의 맛을 믿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물을 프라이 팬에 붓고
김칫국물을 넣었다.
물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
그리고 스팸과 소세지를 넣고 끓이기 시작.
국물이 팔팔 끓을 때
비장의 무기인 라면 스푸를 탈탈 털어 국물에 넣었다.
간을 보니 그럴듯 했다.
다시 파와 콩나물을 넣고 살짝 익힌 뒤
할라뻬뇨를 하나 썰어 넣고
아드님 도착 시간에 맞추어 라면 투하.
건강엔 어떨런지 몰라도 맛만 놓고 보면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내자신의 독신이 위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밤 한 공기를 뚝딱 비우더니
밥을 더 떠서 먹었다.
내 독신 생활의 최대 성공작을 꼽으라면
누가 뭐라해도 이 부대찌개일 것이다.
식사후 아들에게 아빠 요리의 등급을 내 보라고 했다.
솔직하게, 로 스툴 학생답게
공정한 평가를 하라고 했더니
10 점 만점에 10 점,
게다가 별 다섯개를 더 얹어 주었다.
일명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고 말았지만
기분 짱이다.
그런데 독신 생활 중 바쁘면 바쁘다고 할 수 있는시간이 있는데
바로 아침 출근 길이다.
시간적으로 그리 타이트 하지는 않아도
일용할 양식을 챙기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마님이 계실 때는 걱정이 없지만
독신일 때는 내가 다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도 모든 걸 야무지게
챙겼다.
아침에 먹을 시리얼과 점심에 먹을 밥과 어제 남은 부대찌개.
모든 게 완벽했다.
이 정도면 아주 우아하고 퀄리티 춤만한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는
뿌듯한 자존감과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식사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려고 보니
아뿔싸!
수저를 잊고 왔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은
우아한 독신 생활에 금이 갔다.
금수저나 은수저도 다 필요 없고
아무 수저만 있어도 좋으련만----
궁리 끝에 옆 델리 가게에 가서
플라스틱 숟가락 하나 얻어다
끼니 해결했다.
독신 생활,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잘못 하다간 인천 앞 바다가 사이다라도
고뿌 없어 못 마시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참고로 난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아니며
흙수저는 더욱 더 아니다.
난 *스뎅 수저 물고 태어났다.
*내가 어릴 적 대세였던 스테인레스 스틸을 그렇게 불렀다.
내가 만들고 그 맛에 스스로 감탄한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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