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우리집 텃밭에 모종을 심었다.
마님이 농장주고 나는 마지 못해 신간을 때우는 알바생.
닭똥을 말린 비료를 흙과 섞은 후에
모종을 심었다.
단순 노동은 나의 몫인데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은 나는 마님이 하시는 일을
멀건히 바라보는 걸로 대부분의 시간을 때웠다.
작년에도 제법 재미 있게
텃밭 농사를 잘 지었다.
그런데 New Orleans에 다녀 온 뒤
사슴들이 텃밭의 채소란 채소는
싸그리 먹어 치운 걸 목격하고는 의기 소침,
그 자리에서 텃밭 농사를 멈추었다.
집도 팔려고 내 논 마당에
또 텃밭 농사를 짓겠다는 마님에게
매 해 토끼와 사슴들 때문에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가슴 아픈 추억을 이야기 하며
텃밭 농사를 말리려다 말았다.
수확이 있으면 좋겠지만
밭을 일구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그것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과정만으로도
농사를 지으며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 삶의 원천인 흙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정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서너 시간 열심히 일 한 덕에 제법 틀이 잡힌
텃밭이 완성되었다.
(다음은 몇 해 전 쓴 글)
사랑이 열리는 텃밭
우리집 뜰엔 봄의 첫머리가 시작되 전부터 여러 가지 색깔과 다른 모양의 꽃들이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고 또 진다.
한 해 중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꽃을 바라보며 또 기다리는 시간들로 채워지는 셈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 메모리 칩이 있어서 그것을 밖으로 펼쳐 재생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꽃의 빛깔과 향기가 날런지도 모를 일이다.
눈 속에서 하얀 꽃잎을 소담스레 내미는 snow drop을 앞세워서 크로커스, 히야신스같은 꽃들이 피었다가 지면
그 자리를 수선화나 민들레 같은 꽃들이 차지한다.
그리고 부활 무렵엔 목련이나 개나리, 진달래 같은 꽃들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빛깔로 흐드러지게 피어나기에,
꽃들을 바라볼라치면 마치도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빛의 교향악이라고 부른다.
홑잎 벚꽃이 떨어진 잔디를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마치 4월에 흰 색에 가까운 옅은 분홍의 눈이 잔디 위에 내려 앉은 것 같은 환상에 빠지곤 한다.
특별히 달빛이 부드러운 밤에 창을 열고 내다보는 벚꽃이 널린 뜰은 내가 마치도 하늘나라에 와 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이어서 피어나는 장미며 원추리, 금낭화 그리고 양귀비같은 꽃들도 꽃을 바라보며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긴장을 조금도 풀지 못하게한다.
한 여름 동안 이 빛의 교향악은 쉬임이 없다.
집 앞 현관 앞에 서 있는 단풍나무에 달렸던 무수한 단풍잎이 져서 잔디 위에 붉고 노란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이 황홀한빛의 교향곡은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 집 뜰에서 이렇게 꽃을 보고 향기를 맡는 즐거움에 못지 않은 기쁨이 또 하나 늘었는데, 바로 채소를 가꾸어 먹는 일이그것이다.
같은 동네에 장모님께서 사시다가 아리조나로 이사 가신 후론
돌 볼 사람이 없어서 그냥 놀려두어서 잡초만 무성하던 텃밭을 새로 개간(?)하자고 아내가 제안한 것이 3년 전이었다.
아이들 다섯이 다 컸고 막내마저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 나이가 되어서 아내도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까닭이었다.
라일락의 보라빛 향기가 은근했던 5월의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텃밭이라고 해보았자 어른 두 명과 작은 어린 아이 하나가 누우면 족할 만큼의 넓이 밖엔 되질 않는데도 처음엔 시작할 엄두가 나질않았다.
그래도 삽으로 땅을 갈아엎는 내 곁에서 돌과 자갈을 골라내며 밭모양을 솜씨 있게 만들어가는 아내와 오전 내내 땀을 흘린 덕분에
제법 아담한 밭이 만들어졌다.
아내와 난 상추와 깻잎, 고추와 호박, 가지 등의 어린 모종을 심었다.
우리는 어린 모종과 함께 우리 부부의 사랑도 슬쩍 끼워서 심었다.
함께 땀을 흘리며 나누어 갖는 소중한 시간과 사랑이 채소처럼 푸르게 자랐으면 하는 소망도 함께 심은 것이다.
이렇게 땀을 흘린 아침 한 나절의 노동에 비하면 수확은 엄청났다.
산토끼인지 아니면 사슴, 어떤 동물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가지와 호박은 열매가 맺히기가 무섭게 다 따먹어서 맛도 보질 못했지만
상추와 깻잎은 여름 내내 우리 식탁을 푸르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의 수확을 나누어 주는 인정 많은 이웃이 된 것도 다 이 텃밭 덕분이다.
게다가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텃밭에 들리면,
어제 한 주먹을 땄음에도 하루 사이에 또 그만큼 열리고 자라는 고추를 바라보며 꼭지를 똑 하고 따는 그 기쁨은 또 무엇에 견줄 수있을까?
상추를 솎아내고서 그 솎은 여린 상추를 큰 그릇에 밥과 함꼐 고추장에 썩썩 비벼서 머리를 서로 부딪쳐 가며 먹는 한 끼 식사는
천상에서의 식사가 이만할까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찌개를 끓여도 식구마다 다른 그릇에 담을 정도로 유난스레 깔끔한을 떠는 아내도 이 상추 비빔밥 때문에 많이 타락(?)했다.
한 그릇에 비벼서 같이 먹는 것이 따로 각자의 그릇에 먹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아함이나 교양스러움 같은 것을 내 던지고 같은 그릇에서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먹는 우리 부부의 유치한 친근함도 우
리집 텃밭에 힘 입은 바가 크다.
밭 농사일에 서툴기만한 내가 올해는 아내의 말이 나오기 전에 미리 밭을 갈아 엎었다.
이해타산을 따지는 일엔 둔감한 나도 잠시의 노동에 비해서 너무나 수지 맞는게 우리집 텃밭 농사라는 걸 알기에,
채소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사랑도 함께 자라고 열매맺는 우리집 텃밭을 가는 손길이 가벼웠다.
텃밭 주변에 있는 라일락의 보랏빛 향기가 오월의 바람에 싱그럽게 실려왔다.
열심히 일하시는 농장주 마님.
나는 대충 시키는 일만 하고 어슬렁 어슬렁.
텃밭 한 가득 퍼진
보랏빛 풀꽃
초록빛 잎을 따서 코에 대면
민트 향이 폐 속으로----
민들레 꽃씨
텃밭을 일굴 때 라일락 꽃이 피기 시작한다.
우리집 겹 벚꽃도
가지가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피었다.
텃밭 한 켠의 싸리꽃(?)
Japanese Maple
잔디밭엔 사이사이 이름 모르는 풀꽃들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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