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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범죄의 추억-기억 하나

오늘 아침 일어나 거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라는 게 50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간 것이어서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서 쉽사리 그 모습을

알아 보기가 힘이 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기억 셋이 다 범죄(?)와 연관된 추억이다.


촛점이 맞지 않은 사진 같이

희미한 윤곽만 남아 있어서

자세히 서술할 수 없긴 해도 

아주 강렬했던 

주요 장면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자.


첫 번 째 기억.


내 생애 첫 번 째 추억은 너 덧 살 때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수색에 살고 있었다.

국방대학원에 다니시던 아버지도 

거기서 우리와 함께 사셨을 지도 모르겠는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살던 집이 한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미닫이 문애 창호지가 발라져 있었고

바로 그 창호지가 내 범죄 동기를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창호지에 불이 잘 붙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창호지에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운 호기심이

어린 마음 속에서 불길처럼 일어났다.


마당을 가로 질러 가면 대문 부근에 

가업이던 국수공장이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거기서 일을 하셨기에

집은 텅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남포에 불을 붙여야 했고

개스 레인지 같은 것도 없던 시기여서

성냥은 모든 집에 있어야 할 필수퓸이었다.

나는 팔각형 모양의 통 안에 있던 

수 많은 성냥 중 하나를 집어서

성냥 통 옆에 있는 조금 우툴두툴한 갈색 표면에

조심스레 그었다.


너무 조심스레 그어서인지 첫 번 째 시도는 불발이었다.

두 번 째는 첫 번 째의 실패를 거울 삼아 좀더 거칠게 그었다.

할아버지가 남포에 불을 당기시는 것을 보면서

수 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음에도

현실과 상상은 다른 법이다.


드디어 성냥에 불이 붙었다.

불꽃 놀이를 보는 것 같은 흥분감에 온 몸이 짜릿해졌다.

미닫이 문의 창호지에 성냥불을 대었다.


불이 붙었다.

창호지에 붙은 불은 

성냥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거대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황홀한 기분도 잠시,

겁이 더럭 났다.


불을 붙일 때의 그 짜릿함도 잠시

두려움이 몰려 왔다.


어디로든 도망을 쳐야 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짓고

어디론가 숨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땅히 갈 데도 없어 마당을 가로질러

국수공장으로 갔다.(방화범은 불 낸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다고 하던가?)

그리고 거기서 비겁하게 아무 말 없이 잠시 서 있었다.

심장이 콩콩 거리며 뛰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의 입에서

"불이야!" 하는 외침이 들렸다.


어른들은 혼비백산, 모두들 집 쪽으로 몰려 갔다.


그 다음은 기억이 없다.

야단을 들은 기억도 매를 맞은 기억도 없다.

집이 다 타서 밖으로 나 앉은 기억도 없다.


방화가 범죄라면

나는 이미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범죄자가 된 셈이다.


나는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는 것이 맞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내 경우로 비추어 보면

성악설도 맞는 것 같다.


어린 시절 , 이미 범죄의 싹이 자라고 있음에도

아직 전과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음 범죄의 추억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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