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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손녀 Sadie의 축구 연습

일요일 아침, 오전 5 시 기상.

부르클린 아파트에서 희미한 알람 소리에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같은 잠을 깼다.

오로지 축구를 하기 위해 뉴저지 축구장으로 향앴다.

출근하면서 늘 봐 오던 왼 쪽의 일출이

오른 쪽으로 바뀌었다.

어제 비가 내린 까닭에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구름에

빨그스름하게 해의 물이 든 것이 얼마나 황홀한 지

슬금슬금 곁눈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이런 내밀한 기쁨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축구를 마치고

바로 돌아서서 부르클린으로 돌아 오던 중

막 윌리암스버그 다리를 건넜을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Robert(큰 사위)이 집에 없어서 Sadie(큰 손녀) 축구 연습 하는데

할아버지가 함께 갔으면 한다고 소영(큰 딸)이 한테 전화 왔어요."



이럴 때 내 마음은 달뜨고

심장이 축구할 때처럼 바쁘게 뛰기 시작한다.


이제 세상의 기쁘고 슬픈 일들은 두루 경험을 해서

감정이 밋밋해지긴 했어도

손주들 이야기만 나오면 내 몸 속에 초록색 피가 도는 것 같이

생기가 돈다.


샤워를 마치고 또 다시 딸네 집이 있는 뉴 저지의 Morris Plains로 

방향을 잡고 길을 떠났다.


Sadie네 집 문을 열어보니 기척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파 뒤에서

Sadie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하부지를 맞이하는 자기 나름의 기쁨과 환희의 인사법일 것이다.


Sadie는 자기 놀이방 안에 있는

주방 놀이 장난감 오븐으로 구운 토스트와 

과일을 하부지에게 대접했다.


운동장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어

샛잠을 자던 Desi를 깨워 유모차에 태우고

운동장을 향해 떠났다.


운동장은 동네길을 걸어 10여 분 거리에 있었다.

동네길은 봄으로 그득했다.

정원엔 튜울립이 예쁜 색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잔디엔 듬성듬성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나무엔 파란 이파리가 싱싱하게 돋고

내가 좋아하는 Dogwood도 크림 색과 핫 핑크 빛으로

내 눈을 유혹했다.


나이 별로 나뉜 몇 그룹의 아이들이

넓은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만 서너 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기 보다는

한 시간 맑은 하늘, 밝은 햇살 아래에서 

뛰어 놀게 하는 것이 축구 연습의 목적인 것 같았다.


Sadie또래의 꼬맹이들 중에서도

한 두 명은 빠르고 날랜 몸짓으로 코치가 시키는 훈련을'

능숙하게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Sadie는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것처럼

별 의욕이 없어 보였다.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해서 이겨야 겠다는

그런 마음도 없었다.


우리 아들들이 축구를 할 때에

아빠인 나는 아들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좀 못하다 싶으면

잔소리도 하고 꾸지람을 아이들에게 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기도 하고

좀 잘 못한다 싶으면

다른 부모들에게 괜히 민망하고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Sadie를 바라 보면서는

그저 흐뭇하고 기쁜 마음 뿐이었다.

잘 하고 못 하고는 보이지 않고

그저 눈 앞에서 어른 거리기만 해도

가슴 뛰게 반가울 따름이었다.


존재 그 자체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우리 손주들을 통해

느끼고 또 배운다.


어쩌다  Sadie가 '하부지'하고 부르면

봄 눈처럼 내 심장이 사르르 녹아 버리고 만다.

그 '하부지' 소리가 얼마나 황홀하고 감격스러운지

때로는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기도 한다.


축구 연습이 끝나고 나서

나는 Sadie에게 Hi Five를 청했다.

축구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었다.


Sadie와 Hi Five를 하기 위해서는

잔디 밭에 무릎을 꿇고 Sadie와의 높이를 맞추어야 했다.


하부지가 되고 나니 알 것 같다.

하느님의 마음은 

손주의 키에 맞추어 땅에 무릎을 꿇기를 주저하지 않는,

할아버지 마음 같다는 것을----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보다는

'하느님 하부지'로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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