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 둘째 지영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금요일 저녁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는 거였다.
한 달 전에 이미 초대를 받긴 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질 않았다.
아빠 생일에 저녁 한 끼 대접하려는 딸의 마음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지만
식사 한 끼를 위해 쓰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힘든 하루를 마감하고 쉬어야 할 시간에
피로를 감당해야 할
딸 아이의 처지를 생각하면
식사 초대가 기쁘기 보단 내 마음이 먼저 아파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맨하탄에 있는 SVA (School of Visual Art)에서
심리 상담 및 치료사로 일 하면서
일주일에 2-3일은 학교 일정이 끝난 밤에
개인 상담을 하면서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젊은 아이들의 정신적 고충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좋은 면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겪기 힘든
끔찍한 경험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만 해도 두 명의 학생이
자살하겠다는 소동을 부리는 바람에
넋이 빠져 나갈 정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던 것 같다.
문제의 학생들은 외국인 유학생이 대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한국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외국인 학생들은 등록금을 전액 다 내야 하기에
학교 당국으로서도 비지네스 측면으로 수지가 맞는다.
전체 학생의 40% 정도가 외국인 학생이고
그 중 반은 한국 학생이라고 하는데
언어를 포함한 외국 생활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언어나 문화 차이를 견뎌내지 못 해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많은 문제가 생기기에
학교 당국에 여러 차례 건의를 해도
황금알을 낳는 외국인 학생들을 포기할 의도가
학교 당국에게는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사위 Brian이 곁에서 잘 보살펴 준다는 지영이 말에
조금 위안이 되기는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지영이에게 위로가 되려는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전철을 타고 맨하탄으로 향했다.
사무실은 Park Ave, 와 26st. 코너에 있는 빌딩 31층에 있었다.
사무실 찾아 가는 길에 만난 벽화
사무실에서 한 장.
눈으로는 멀리 허드슨 강 건너 뉴 저지 쪽도 보인다.
31 층 로비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같은 블락에 있는 식당.
'Park Avenue'
그 밑에 Autumn이라고 써 있다.
계절따라 이름이 달라진다고 한다.
'Park Avenue Spring' ;Summer'---- 이런 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면에 투사된 바람에 나부끼는 단풍나무 사진이
우릴 맞는다.
실내 장식도 계절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빈 나뭇가지.
'Amuse Bouche'
처음 듣는 말.
프렌치 어로 '입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
애피타이저는 메뉴에 나와 있고
당연히 돈을 내야 하지만
amuse bouche는 세프가 제공하는 일종의 맛뵈기로 공짜다.
그런데 이 공짜가 이 날 식사 중 제일 맛이 좋았다고 하면----
나무 꼬챙이 끝에 lolly pop처럼 달려 있던 건
사과로 만들었는데 달콤 새콤한 맛이 났다.
그리고 펌킨 케익.
넛과 함깨 구운 펌킴 케익은 정말 맛이 좋았다.
사과와 펌킨- Park Avenue Autumn에 걸맞는메뉴였고
이 식당에 내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그리고 캌테일
딸이 한 모금 하라고 해서
마셨는데 jin 맛이 났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술의 하나다.
그리고 애피타이저
세 가지를 주문했다.
이건 일종의 스시.
스시 아래에 와사비 같은게 깔려 있었는데
와사비는 아니고 단 맛이 약하게 나는 소스였다.
당연히 맛도 실망스러웠다.
미국 사람 입맛에 맞게 변형된 맛.
일종의 라비올리?
메인 디쉬
마님은 scallops
셋째 선영이는 생선.
지영이는 랍스터
나는 치킨.
늘 그러하 듯 난 외식을 할 때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 것이
짜장면이다.
맛으로만 치면 짜장면을 먹는 것이 최고의 외식이다.
그러나 지영이가 나의 취향을 알면서도
굳이 짜장면의 열 배가 넘는 가격의 식사를 하자고 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먹었던 음식의 맛은 기억하지 못 해도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힘들고 어렵게 번돈을 쓰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함께 한 시간 때문에 행복했다.
성경 속 요한 복음에서
마리아가 아낌 없이
그 비싼 나르드의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던 것처럼
난 지영이의 마음을, 그 사랑을 받았다.
디저트.
촛불을 켜고 나직하게
Happy Birthday!
노래를 부르고 난 촛불을 껐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아파트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스웨터와 자켓을 입고 한 장.
마님이 찍어서 우리 식구 페북에 올렸다.
함께 하지 못 한 아이들에게 보내는 인증샷이다.
내가 귀한 사람이 되어야
우리 아이들도 귀하게 된다.
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마음 속에 되 새긴다.
싸고 맛 있는 것이 곧 아룸다움이라는
나의 실용주의적 미학이나 신념 같은 건
잠시 옆으로 미뤄 놓아도 좋다.
사랑보다 앞 서는 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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