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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문화적 허영 - New York Phil


지난 주에 마님에게 통보를 받았다.

11 월 1 일에 연주회에 갈 예정이라고----


가슴이 떨려야 할 텐데

머리가 떨렸다.


연주회 다음 날 아침에 잡혀진

세탁소 보일러 인스펙숀이

온통 내 머릿 속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살던 내 20 대엔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뉴욕 필이나 베를린 필이라는 소리가

귓전만 스쳐도 

살짝 흥분이 되곤 했었다.


지지직 거리는 소음과 함께 듣던  모짜르트의 교향곡,


며칠 점심을 굶고 

성음이라는 음반회사에서 라이센스 판으로 나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하였다"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조심스레 턴 테이블에 올리던 순간의 떨림.


정작 멀쩡한 소리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어도

마냥 좋았던 시절이 분명 내게 있었다.


그런데 연주회에 가자는 마님의 통보를 받고서

그렇게 머리에 쥐가 나는 까닭은

내가 너무 생활, 혹은 생존의 깊은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큰 아들 나이와 같은 우리 세탁소의 보일러 Inspection은

몇 해 전부터 물이 가득 든 물 잔을 옮기는 것 처럼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일이 되었다.


보일러는 2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기 저기 낡고, 녹이 슬어서

열어 보기가 두려운 지경이 되었다.

마치 건강 검진을 받은 지 10 년이 훌쩍 넘은

내가 환갑이 다 된 나이가 되어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할 경우와 같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 한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늘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연주회 당일 오후,

일이 끝나고 보일러가 식기를 기다려

직원에게 검사 받을 준비를 하라고 청했다.

잘 못 하다가 나사 하나라도 부러지면 

당장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몸은 카운터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세탁소 뒷 쪽에 있는 보일러에 가 있었다.


한 시간 반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보일러 안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마음을 다 쏟아서 걱정을 했더니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졌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마님은 언제 출발 할 수 있는 지 몇 차례 독촉하는 전화를 했다.


결국 늦지 않게 출발을 해서 

여유 있게 연주회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 꿈이었던 

뉴욕 필의 연주가 그리 흥분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일까?


젊은 시절의 열망은 문화적 허영이었을까?

아니면 세월에 때가 끼어서 일까?


솔직히 말 하자면

이제는 집에서 '불후의 명곡'을 보는 것이 

링컨 쎈터에서 뉴욕 필의 연주를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지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런대로 괜찮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고 있고,

수 백 장의 클래식 CD와,

백여 장의 LP판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부자다.


그런데도 친구 집을 전전하며

음악 동냥을 하던 

음악이 고프던 

그 시절이 자꾸 그리워 진다.


'왕년에는----' 어쩌구 하는 흘러간 이야기가

내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걸 보니

나 이제 '꼰대'가 다 되었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이 쯤 된 걸 보니

내 젊은 날 음악에 대한 열정은 

문화적 허영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모든 게 아리송할 뿐이다.


* 참고로 음악회 티킷은 셋 때 딸 선영이가 협찬해 주었습니다.




66 가의 Lincoln 역에서 내리면

바로 Lincoln Center로 연결이 된다.

비가 와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연주회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간 Lincoln Center




시간 여유가 있어서 

링턴 쎈터 앞에서 한 장.



사진을 보고서야

링컨 쎈터 중앙의 분수대가 있는 곳이

Jossi Roberson Plaza 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분수대 뒤로 보이는 것이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공연장인데

로비에 샤갈의 그림이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곳.

나는 단 한 번 가 보았다.

푸치니의 라 보엠 공연


왼 쪽은 뉴욕 발레 공연장.

오른 쪽이 뉴욕 필 공연장.

전에는 'Avery Fisher Hall'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이름이 바뀌었다.

몇 번 들었는데도 외워지질 않는다.


아마 돈의 위력일 것이다.

이름 갈아치울 수 있는 것도---




이 곳에서 사진 한 장은 

다주 당연한 일.




평소 잘 안 하는 짓

일명 쎌카로 한 장.





연주회장 밖에는 이렇게 

공간이 있어서

중간 휴식 시간에 신선한 밤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오른 쪽 빨간 색이 보이는 건물에서는

연극이 공연된다.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극장

'돈 조반니' 공연에

사람들로 꽉 찼다.


우리나라 출신 소프라노 홍헤경과 신(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이 

프리마 돈나로 활약한 곳.





연주회 시작 전.

전에는 사진 찍으려는 기색만 보여도

직원들이 달려와 막더니만

이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전화기를 통제하기는 역부족.

그래도 연주가 시작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물론 내 DSL 카메라는 반입이 금지 된다.


참고로 이 날 연주회 레파토리는

바르톡의 곡(아주 대곡인데 이름을 잊었다.)

그리고 막스 부르흐(Max Bruch)의 바이올린 협주곡 1 번

바이올린 협연자는 Frank Huang.

뉴욕 필에서 악장(Concert Master)으로

몇 해 연주 했으므로 자신의 친정 식구들과의 협연인 셈이다.


휴식(Intermission)


드보르작 교향곡 7 변



연주회가 끝나고 엘로우 캪을 타고

간 곳은 맨하탄 한인 타운인 32가.


밤 열 시를 훌쩍 넘겨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점심을 굶고 사고 싶은 판을 사야 했던 

젊은 날의 열정은 어디 갔나?


저녁 식사 한끼와

뉴욕 필 연주회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황하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고

"저녁 식사"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참고로 저녁 식사를 한 곳은

'더 큰 집'.

같은 동네에 '큰 집'이라는 식당이 있다.

아마 이 곳은 그 곳보다 나중에 생겨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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