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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독신 일기 - 다시 일요일






어제는 동서 부부와 집에 들어오는 길에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포트리에 있는 한식당에서였다.

음식점 품평에 인색한 나도

이 식당만큼은 후한 점수를 준다.

 

음식 맛도 훌륭할 뿐 더러

서비스도 제대로 하기에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한식 식당의 서비스가 손님 대접이라기 보다는

음식을 주방에서 식탁까지 운반해 주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니 팁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식당에서는 맛난 음식과 함께 

손님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는 생각에 

당연히 후한 팁을 주게 된다.

 

어제는 동서에게 신세를 졌다.

 

집에 돌아 오니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동네를 배경으로

집은 거대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벽을 더듬어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는 

내 손가락이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불을 밝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어둠 속을 더듬는 손가락처럼 외로운 것이 또 있을까?

 

손가락도 때론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탄다.

 

불이 켜 졌다.

내 마음에도 불이 들어 왔다.

지난 주에 딸과 함께 먹으려고 사 놓았던

케익 상자를 열었다.

이리 저리 둘러 보고 냄새를 맡아 보았는데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서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동무해서 먹었다.

습기는 조금 빠져 나갔지만

커피랑 함께 먹는 케익 맛은 

어둠 속에서 켜진 불빛처럼 내 마음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

 

노래 속에 빠지면서 마음 속의 어둠도 조금씩 물러 갔다.

프로그램 종료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으슬으슬.

 

영혼이 시린 잠자리.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조용히 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비가 가벼운 존재 때문인지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축구를 하러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잠시 갈등하다 가기로 마음 먹었다.

빗줄기가 좀 거세지면

축구장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아침 식사라도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잊고 다니는 지갑을 챙겼다.

 

넓은 주차장에 나 밖에 없었다.

그래 난 어릴 적부터 혼자인 것에 익숙했지.

혼자 걷고,

혼자 생각하고-----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혼자인 것이 어색하다.

 

빗방울이 피아니 시모의 세기로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채 아래 쪽으로 흘러 내렸다.

얼마간 가로등 불 때문에 생긴 내 그림자와 함께 걸었다.

 

그리고 축구장.

 

비 내리는 운동장에 다시 나 혼자 섰다.

허리케인의 영향인지 

바람이 설렁설렁 키 큰 나무의 머리 부분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혼자라는 느낌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과 같다.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 들고

축구를 했다.

 

축구를 하는 동안 나는 나와 헤어졌다.

 

집에 들어 와서

샤워를 하면서 양말과 속옷을 빨았다.

지난 주에 벗어 놓았던 속옷도 마저 꺼내서 빨았다.

혼자인 나와 

또 혼자였던 속옷이 만나 서로 위로하는 시간.

 

빨래를 하면서

혼자였던 서로의 시간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나와 함께 했던 시간,

나와 헤어져 지낸 시간.

 

삶이 그런 것 같다.

때로 같이 있다가 때로 혼자였다가-----

대상이 누구이든, 혹은 무엇이든.

 

늘 함께 하는 것은 나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만나는 것은 바로 빈 집에서이다.

 

빨래를 널고

난 다시 혼자가 되어

커피 한 잔을 내렸다.

 

혼자였던 커피가 졸졸 소리를 내며 머그 잔에 흘러 내렸다.

지금까지 혼자였다고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혼자인 내가 혼자였던 커피를 만났다.

 

지하실.

내 놀이터로 내려갔다.

 

막스 부르흐와 시벨리우스를 들었다.

앰프의 볼륨을 맥시멈의 1/4까지 올렸다.

더블 베이스가 작은 속삭임으로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 늘 혼자였다고----.

 

베에토벤의 교향곡 5.

 

'운명'

 

볼륨을 앰프의 능력 한계 치의 1/2 까지 올렸다.

그리 크게 들은 건 처음이었다.

집에 나 혼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바닥이 쿵쿵 울렸다.

앰프와 스피커도 처음으로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이

자신 있게 소리를 토해 내었다.

그것은 전에 만나지 못한 '운명'이었다.

혼자여서 새롭게 만난 '운명'.

 

운명을 수 십 번도 더 들었지만

오늘에서야 더블 베이스가 나직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앞으로 혼자가 되어서 만날 수 있는 운명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혼자가 늘 쓸쓸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결론.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앰프의 능력이 허락한 볼륨의 반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혼자 지내는 일은 나와 좀 더 가까워 지는 일이다.

그리고 혼자여서 만날 수 있는 운명과 만나는 일이다.

 

팀파니의 울림이 처음으로

내 심장과 함께 둥둥거렸다.

 

혼자에 익숙해지면서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혼자 있으면서 나를 더 사랑하고 대접하는 법을 배운다.

 

간 밤에 제법 많은 나뭇잎이 떨어졌다.

설익어 떨어진 나뭇잎 하나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아주 노랗지도 않고 아직 녹색이 남아 있는 그런---

 

어제까지 다른 나뭇잎들과 어울려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녀석이다.

 

"너 이제 혼자구나."


"나도 혼자란다."

 

혼잣말을 했다.

바람 한 줄기가 내 귓전을 스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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