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을 먹고 나니
입고 있던 나비 날개처럼 얇은 면 스웨터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등에 땀이 찰 정도로 더웠다.
온도를 체크해 보니 화씨 80도, 섭씨로는 27도 쯤 되었다.
세탁소 안은 85도는 거뜬히 될 것 같았다.
'인디안 써머'인 모양이다.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의 플리무스에 닻을 내리고,
그곳에 정착하면서 첫 가을을 맞았다.
가을이 되어 하루하루 기온이 내려가기에
여름 옷들을 정리해 깊숙한 곳으로 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농사 짓는 범을 가르쳐주던 원주민(인디언)들이
그걸 보고는 아직 여름이 다 가지 않았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초여름 같은 날씨가 며칠
계속되었다고 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며칠 동안
'서프라이즈!'하고 찾아오는 초여름 날씨를
그 때부터 '인디안 써머'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귓전으로 흘려 들은 이야기라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어도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이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내 삶도 이젠 가을이다.
여름이 지나고 잎이 떨어지는 조락의 계절이 된 것이다.
아무리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왔다지만
이젠 여기 저기 몸에 이상징후가 뱔견된다.
죽을 병은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눈이 어두워진 건 옆으로 미루어 두더라도
이에 금이 가서 음식을 먹을 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팔꿈치 옆의 근육이 당겨서
세탁소에서 스테이플을 사용할 때와
무거운 옷을 들 때 찌릿찌릿 저류가 흐르는 것처럼 아프다.
열거하자면 몇 가지나 더 있지만
이런 모든 신체 조건은 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잎이
다시 푸르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니 푸르렀던 마음도
덩달아 물기가 빠져간다.
내 인생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가을을 지나가고 있다.
계속 내려가는 기온 때문에 추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인디안 써머는 며칠 동안
안식을 준다.
어제도 사람들은 반팔 셔츠와 반 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 더운 날씨에 두꺼운 코트를 입은 노인들도 있긴 하지만서도----
'자꾸 움츠러들기만 하는 내 영혼에도
갑자기 인디안 써머처럼
초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와
'서프라이즈!'하고 손을 흔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는 스웨터를 반 팔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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