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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독신 일기 - 방문

독신 일기 방문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집 안이 보통 썰렁한 게 아니었다.

겨울에 덮는 이불을 그대로 덮었는데도

밤 새 아랫도리가 허전할 정도로 찬 기운이 돌았다.

언제부터일까?

날이 선선해지면

파자마 바지를 입어야만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

 

쌀쌀한 날씨보다도 이런 생각이

나를 더 춥게 만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갈 곳이 있다.

축구.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아니면 내 혼자인 집에서 커피 한 잔에 냉기를 껴안고 궁상을 떨었을 터이니 말이다.

 

밖으로 나왔다.

흐린 하늘, 살짝 비가 내렸나 보다.

차가 있던 자리를 빼고는 주위가 까맣게 젖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훈훈한 기가 느껴졌다.

 

밖이 집 안보다 더 훈훈하다는 사실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축구를 마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빵집에 들러 찹쌀 도넛 두 개와 단팥 빵 하나를 샀다.

그리고 아몬드와 함께 구운 쿠키도 샀다.

딸 아이가 온다고 했으니

커피와 함께 먹을 케익도 하나 샀다.

플라스틱 백에 든 내용물처럼

마음이 불러왔다.

 

누구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이

돌돌돌 구르는 샘물처럼 내 마을을 가볍게 했다.

 

집 안에 들어서니

집 안은 여전히 썰렁했다.

지난 겨울 이래 처음으로 거실 쪽의 히터를 켰다.

나 혼자면 몰라도 손주들이 추울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구리 관 속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딱딱 소리를 내며 더운 물이 흐르면서

집안을 덥히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의 구리 관 속에 따뜻한 물이 돌면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참 오랜 만에 가슴이 따스해지는 걸 경험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들었다.

까닭 없는 그리움이 마음 속에 차 오를 때면 듣는 곡이다.

비 오는 날에도----

빗소리가 첼로 선율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 따뜻한 물이 몇 바퀴를 돌았을까?

현관 문 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귀는 음악 소리에

마음은 현관에 가 있었다.

 

반가운 재회를 했다.

3주만에 보는 손주들의 얼굴이 건강했다.

 

'Sadie가 혹시 날 알아보지 못 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우린 예전의 가까운 사이 그대로였다.

다만 Desi가 처음엔 얼굴을 찌푸리며 낯설어 했다.

그러나 곧 그 아이의 천사 표 미소가 쉴 새 없이

우리 집 텃밭의 망초 꽃처럼 피어 올랐다.

 

아이들과 노느라 딸 아이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케잌을 먹는다는 걸 깜빡 하고 잊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는 바자가 열리고 있었다.

Sadie는 나를 따라 나서겠다고 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아직 차고에 남아 있는 

유아용 Car seat를 내 차에 설치하고 성당으로 행했다.

사랑하는 손녀를 내 차에 태우고 가는 마음,

그 풍요로운 행복감을 누가 알까?

뒷 좌석에 금은보화가 그득 실려 있다 한들

이리 행복하고 신이 날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청소년들이 만들어 파는

솜사탕이었다.

Sadie는 그 솜사탕을 받아 들며 좋아했다.

솜사탕 하나의 행복,

Sadie의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솜사탕 하나로 두 사람 모두 달콤해졌다.

 

여기 저기 다니며 딸에게 줄 어묵 국과

꼬치구이 두 개를 샀다.

 

솜사탕을 거의 다 먹을 무렵

갑자기 Sadie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자기 엄마라면 금시 알아차렸을 텐데------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

 

"엄마한테 갈까?"

Sadie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과 입에 묻은 옅은 보라색의 솜사탕 자국을 지울 새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Sadie는 옅은 보랏빛의 솜사탕을 기억할까?

나는 오래 동안 그 빛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짐에 돌아 오서 보니

그 사이 Sadie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딸에게 물었다.

Sadie가 갑자기 울었는데 왜냐고.

피곤하면 가끔 그런다는 대답을 듣고는 안심이 되었다.

 

딸이 어묵 국을 먹는데

Sadie가 달려 들어 금붕어처럼 입을 내밀었다.

얼마나 잘 먹는지----

Sadie 입이 금붕어 입처럼 예뻤다.

누나 곁에서 Desi도 까치발을 하고는

자기 엄마가 떼어주는 어묵을 우물우물 잘도 받아 먹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난 더 사올 걸----

 

Sadie가 이리 어묵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딸 아이에 따르면 만두도 그리 잘 먹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바자에서 만두를 팔던 것이 생각났다.

살아가면서 이리 놓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되는 지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때를 놓쳐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며 살아온 시간들-----

 

얼마 후에 Sadie 아빠가 왔다.

10 2 일이 큰 딸 부부의 결혼 기념일이었는데

눈치 없는 내가 깜빡 했다.

축하의 인사도 못 했다.

 

큰 딸은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갈 작정으로 온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해도 좋으련만

저녁 시간까지 있어야 할

손주들이 걱정되었다.

잠이 들어도 제대로 누일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큰 딸네가 이사를 간 뒤부터

하나 둘씩 세간을 줄이기 시작했다.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한 집을

비싼 세금 (일년에 2 4천 달러가 넘는다.) 을 내면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 아이들이 집에 와도

방은 남아 돌지만 누울 침대 하나 변변하게 남아 있지 않다.

집을 판다는 전제 하에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손주들이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긴 시간을 지내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

서둘러 아이들의 등을 떠 밀어 자기 집으로 보냈다.

 

짐을 나서며 Sadie가 인사를 했다.

 

"Bye ...!"

 

Sadie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하부지'에서 '할아부지;로 바뀌었다.

 

하부지와 할아부지의 가늠할 수 없는 그 간극.

 

음절 하나의 거리가 대견스러웠고

또 쓸쓸했다.

 

Sadie가 나를 부르는 '하부지'가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랬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음절 하나가 늘어난 것은

Sadie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 주었다.

 

음절 하나의 증가는

Sadie에게는 성장이고

내게는 쇠락이다.

 

나는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Sadie네 식구가 떠난 자리를

고요함이 다시 채웠다.

 

빈 집.

 

낮에 Sadie에게 사 주었던 솜사탕의 연 보랏빛이

내 눈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속절도 없이 밤이 몰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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