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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독신 일기 - 빈 집



토요일 오전부터 슬슬 걱정이 되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주말을 어떻게 지낼 지가 막막해서였다.

토요일에 교직과목 달랑 한 시간인가 두 시간 때문에

학교 갔다가 수업이 끝난 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찌 채울 지 막막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 올랐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살다 보니 넝쿨째 굴러온 자유가 이리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저녁 식사를 어찌 해야 하나-

Closter에 있는 '버거 킹'으로 들어갔다.

한식당에 가서 혼자 청승을 떠느니 

비교적 한가한 버커킹에서 '혼밥'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Double Whopper'에다가, 평소엔 먹지 않는 탄산 음료와

프렌치 프라이까지 주문하니 제법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프렌치 프라이를 케첩에 찍어먹으며

손녀 생각을 했다.

우리 Sadie는 프렌치 프라이를 먹을 때면

눌 케첩에 찍어먹는다.

프렌체 프라이를 케첩에 찍는 순간 Sadie의 모습이 눈에 어렸다.


아, 그렇지,

토요일 밤만 잘 지새면

일요일 아침엔 Sadie네 식구가 온다고 했지.

일요일의 빈 시간 얼마는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꾸역꾸역 그 큰 햄버거를 해 치웠다.


집은 안이나 밖이나 어두웠다.

우체통에서 한 주일 동안 밀린 우편물을 챙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로 현관 문을 열어야 했다.

우리 집 현관 문을 열쇠로 여는 일은

아이들이 어렸을 땐 거의 하지 않던 일이어서 영 서툴기만 하다.

현관 문 열쇠는 지금도 낯이 설다.


그렇지 우리집 문은 늘 열려 있었다.

다섯 아이들이 늘 들락날락 했으니

차라리 문을 열어 놓고 살았다.

그것은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라도 집에 돌아오면 그냥 열려 있는 문.

우리 현관 문은 엄마 아빠의 마음과도 같았다.

아무 때나 필요할 때 열고 들어 올 수 있게 늘 열려 있는----


집에 들어서니 고요한 중에

냉장고 소리만 요란했다.

주인이 없어도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있다는 항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무얼 하지?-


그 때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사과 셋이 눈에 들어왔다.

씼지도 않고 옷에 대충 문지른 후 한 잎 크게 베어 물었다.

그 소리도 과장되어 크게 들렸다.


Sadie네가 이사를 간 후

집은 비어 있는 때가 훨씬 많다.


'빈 집'


아들들이 어렸을 적엔

내가 현관에 들어서면

위층에서 베개를 던지거나

아니면 현관에 있는 옷 장 속에 숨었다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놀래키곤 했다.(알며서도 짐짓 속는 체를 했다.)


Sadie와 같이 살 때면(불과 한 달 반 전까지도)

Sadie가 창문으로 손을 흔들어 나를 맞곤 했다.


아무도 없이 크기만 큰 집이어서인지

그 적막감이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감은

하나 둘 내 곁에 있던 것들을 떠나 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내 가슴 속도 점점 가을 잎처럼 말라가고 있는 것 같다.

토요일 밤엔 늘 '불후의 명곡'을 보곤 한다.

컴퓨터를 열고

'불후의 명곡'에 접속을 했다.


'불후의 명곡'


결코 없어지거나 스러지지 않는 명곡.

그래, 그런 것들이 있을 거야.

'쉘부루' 두번 째 편이 방송되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명동에 있던 쉘부루가 지금도 있을까?


월요일 아침에 기억을 되 돌려 보니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불후, 


사라지는 것은 개인의 기억과 추억이다.

가을 밤은 깊어 가고

내 하루의 기억도 저물어 간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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