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도둑 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517
"크크크크------"
입이 옆으로 째진다.
어릴 때 쓰던 표현으로 하자면 '기분 째진다.'
이번 South Carolina와 워싱톤 D.C 여행을 통해 얻은 전리품 때문이다.
그 전리품은 호텔에서 쓰던 비누 석 장이다.
찰스톤에서 두 장 워싱톤에서 한 장,
도합 석 장의 비누가
그 옛 적 겨울이 시작될 때 연탄 광에 가득 찬 연탄처럼
내 가슴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지난 번 뉴 올리언즈를 다녀 오면서도
두 장인가의 비누를 슬쩍 했으니
적어도 올 해는 집에서 쓰는 비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이 아니 좋을 쏘냐.
나는 샤워를 하면서
샴푸를 쓰지 않는다.
물론 샴푸가 두피에 그리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이다.
샴푸가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보다는 비누가 샴푸보다는
환경에 덜 해롭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하기야 젊은 시절
샴푸로 머리를 감고, 린스까지 정성 들여 하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면 그 부드러움 때문에
기분이 좋은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밖에 나갔을 때
가끔 바람이라도 불어 오면
머리를 까딱 뒤로 젖히며
흘러 내린 앞머리를 다시 뒤로 보내며
마치 샴푸 광고의 모델처럼 찰랑이는 머리 때문에
나르시스트가 되곤 했었다.
이젠 머리 숱도 없어서 볼품도 없는 데다가
검은 머리를 세는 것이 훨씬 빨라진 지금
머리 가지고 자아도취에 빠질 일은 전혀 없으니
샤워를 하면서 비누로 모든 걸 해결한다.
샤워를 할 때는 먼저 물을 튼 후에
물로 머리와 몸을 적신 후,
물을 잠근다.
그리고 머리와 온 몸에 비누칠을 한 뒤에
머리와 몸을 문지른다.
다시 물을 틀고 머리와 몸에 묻은 비눗기를 씻어내는 걸로
나의 샤워는 완성이 된다.
슬쩍 해온 비누와
가능한 적은 양의 물로 샤워를 하면서
나는 제법 엄숙해진다.
누가 몰래 카메라로 관찰을 한다면
아주 인색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나의 샤워 의식(?)이지만
나름대로 제법 엄숙한 것은
샤워를 하면서 내 손주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과 물 부족'
환경 문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내 사랑하는 손주들이
맑은 공기로 숨 쉬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살 수 있도록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제한하고 아끼는 것도
그들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 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슬쩍 해온 비누로
인색하기 짝이 없는 샤워를 하면서 손주들을 생각한다.
사랑은 현재뿐 아니라 먼 후 날에도 지속되어져야 할
그 어떤 것일 것이다.
(먼 훗날 손주들이 할아버지가 비누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손주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샤워를 마친다.
(*비누 도둑에게도 원칙은 있다.
박스를 역고 사용한 비누에 한해서만 슬쩍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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