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서 영화를 볼 짜투리 시간을 찾기 힘들다.
문학이나 음악, 영화 같은 것이, 특히 집중이 필요한 일에는
누군가와 같이 하지 못하기에
한국영화를 혼자 본다는 건 참으로 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방송일을 그만 두고는 좀 여유가 생겨서
미루어두었던 영화 몇 편을 보았다.
"파주'
한국에 살 때에는 영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파주라는 곳을
작년, 그리고 올 해 두 번이나 다녀왔다.
출판단지 안에 있는 친구의 출판사를 방문하기 위해,
그리고 올 해엔 덧붙여 임진각과 헤이리라는 곳도 다녀왔다.
강을 옆으로 끼고 난 파주 가는 길엔 내가 군대시절 근무할 때 보았던
철책이 서 있었고 군데군데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이 보였다.
철책 이 쪽과 저 쪽은 영 다른 세상이었던 것을-----
철책 너머의 강은 더 이상 내가 손을 적실 수도 없는 영 낯 선 곳이었다.
마치 철책 구멍 사이로 멀리 보이던 비로봉이나 낙타봉이
갈 수 없는 먼 나라였던 것처럼 말이다.
강으로부터 밀고 오는 안개는 아마도 파주의 그 낯선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는 안개 같은 영화다.
시작과 끝이
안개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형부와 처제라는 평상적인 관계가
안개같이 희미하게 얼버무려진다.
물론 그들의 사랑도 안개와도 같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안개 속.
난 마치도 설익은 꿈을 꾼 듯했다.
나의 이성이나 감성도 저리 미루어 놓고
그저 부서지고 이지러진 어두운 영상을 따라
무의식이 이리저리로 표류하다 돌아왔다는 느낌.
삷도 사랑도, 윤리나 도덕도
이렇게 안개처럼, 무의식처럼 적당히 얼버무려지는 곳.
'파주'는 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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