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쓰는 편지(2012.03)
영락없이 봄이네요.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날이 풀리면서 키 작은 꽃들이 눈을 비비며 조심스레 땅 위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네요.
저희 집 뜰에도 ‘snowdrop’이라는 꽃이 몇 군데 나누어서 무리를 져서 피어있습니다.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2주 전 내렸던 폭설 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이젠 제법 소담스레 피어있습니다.
짙은 초록 잎 사이로 하얀 꽃잎이 종처럼 달려 있고
그 하얀 꽃 잎엔 초록 색의 하트 무늬가 있는 꽃입니다.
아내가가르쳐 주어서 일부러 땅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그 꽃들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청초하다는 표현이 참 어울리는 꽃입니다.
참 신기하더군요.
한 겨울 언 땅 속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하얀 미소로 이 봄에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온
그 꽃들이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초록색의 하트 모양으로 미소를 건네는 그 꽃들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일, 그리고 살아서 또새로운 봄을 맞는 일이
이리도 반갑고 눈물이 나게 고마운 일인지 새삼스레 느껴지더군요.
사실 지난겨울 너무 추웠습니다.
바깥 날씨뿐 아니라 그보다 더 꽁꽁 얼어붙은 경제 상황이
마치도 밤이 몇 개월씩 지속된다는 북유럽 어느 나라에 사는 듯이
음산하고 우울한 느낌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매워도 봄이 되면
날이 풀리고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게 됨을
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꽃들의 미소를 통해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동화작가인 이현주 목사님의 수상집 ‘지금도 쓸쓸하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그렇죠, 슬픔, 두려움, 공포, 나 고통 같은 것도
우리에게 겨울이 찾아오듯
그렇게 손님처럼 우릴 찾아왔다가
때가 되면 또 우리 곁을 떠나는 손님 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견디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또 새로운 손님이 되어
봄꽃처럼 환한 미소로 우릴 찾아오겠지요.
마치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배시시 환한 미소를 보내던 snowdrop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따사로운 봄바람이 뺨에 와 닿습니다.
불란서 시인 폴 발레리의 시 중에'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 맘대로 한 글자를 더 보탭니다.
'봄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고-------
봄은 그것을 느끼고 발견한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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