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큰 딸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티켓을 사주어서
풋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보며 발렌타인 데이를 보냈는데,
올해엔 둘째와 셋째 딸이 ‘The Light in Piazza’라는 뮤지칼 티켓을 마련해주어서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인 어머니와 딸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겪는 에피소드와 로맨스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휴식시간에 아내에게 “당신이 딸 Clara 역을 맡아도 될 것 같이 날씬하고 예쁘다”고 말해주었더니,
“정말?” 하며 좋아했습니다.
사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아내는 오십을 바라보는 보통 여성으로
아줌마라는 호칭이 딱 어울는 펑퍼짐한 몸매를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이 옷도 안 맞고 저 옷도 안 맞아 입을 옷이 없다는둥,
여기저기 몸이, 특히 손마디와 무릎관절이 아프다고 투정을 했습니다.
그런 하소연을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니고 틈이 날 때마다 들어야 하니 걱정과 함께 짜증도 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난 의도적으로 아내에게 자못 매정하게 말을 했습니다.
“ 당신, 다이어트해.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은퇴하고 나서도 당신 휠체어나 밀고다니게 할꺼야?”
그해 친구 아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집을 다녀갔습니다.
자기가 재수를 할 때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먹고 운동도 하지 않아서
무지막지하게 체중이 늘어서 친구들이 자기를 알아보질 못할 정도가 되었답니다.
이에 충격을 받고 마음을 다져 운동과 다이어트로 정상체중을 되찾았다는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그얘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고무되었습니다.
그 후로 좋아하는 빵과 케익을 거의 먹지 않고 야식도 자제하더니,
하루는 줄넘기를 사왔습니다.
밖에 나갔다 돌아와 집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통과제의라도 되는듯이 줄넘기를 100번씩 했고,
하루에 천 번을 채워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열심히 줄넘기를 했습니다.
처음엔 얼마나 갈까하고 못미더운 눈길을 주었는데
한달, 두달 지나는 사이, 아내는 눈에 띄게 날씬해졌고
급기야 20 파운드까지 몸무게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겼는지 십 몇년 입지 않던 청바지를 사왔습니다.
그것도 딸들에게 물어서 제일 fancy하고 sexy한 것으로 말입니다.
청바지를 입은 몸매가 너무 예뻐서 sexy하다고 했더니 볼이 발그스름해지며 흥분했습니다.
파킹장에서 링컨 센터로 가는 길에
핑크 스웨터를 입은 아내와 나는 젊은 날 연애할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여보’라고 부르지 않고 ‘경애야’하고 속삭이며
팔짱을 끼라고 했더니 팔짱은 물론이려니와 머리까지 내 어깨에 기대어왔습니다.
그 무게감이 참으로 포근했습니다.
시간은 삼십 년 뒤로 돌아간듯 했습니다.
링컨센터의 분수대에 반사되는 불빛들이 빛깔의 교향악을 연주하듯 황홀하게 빛났습니다.
밤늦어 돌아온 우리부부를 겨울방학을 맞아 다니러온 친구의 딸들이 자지 않고 맞으며,
작은 캔디를 건넸습니다.
“HAPPY VALENTINE’S DAY, 아줌마” 하며 인사를 하길래,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너희들 눈에는 내 아내가 아줌마로 보이니?” 하며 꾸짖는 척 했더니,
바로 맞 받아 그,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 죄송해요, 언니, 그리고 오빠”
날씬해진 아내 덕에 난 나이 오십이 다되어서도
대학생들에게 ‘오빠’라고 불리는 그야말로 “젊은 오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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