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라는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라는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지난 달에 아내는 한 주일이 넘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곰국도 끓여놓지 않고 아내가 떠났기에
식사준비며 설거지 등은 집에 남은 식구들의 몫이었습니다.
마침 집에 남아있던 둘째딸이 아들과 함께 장을 봐오고
제딴에는 제법 신경을 써서 저녁상을 봐서
식사는 그럭저럭 해결할 수가 있었는데
설거지가 문제였습니다.
먹을 때는 좋았는데 다 먹고 난 후엔
긴 여름날 하루 노동 끝머리에 밀려오는
고단함과 게으름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은 정말 힘겨웠습니다.
첫 날은 설거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대로 해치울 수가 있었는데
둘 째날은 영 하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그냥 다음 날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설거지는 아빠 몫니니까
건드리지지 말고 그냥 두라고
제법 비장하고도 심각하게 으름짱도 놓았지요.
셋째날에 퇴근해서 돌아와 낮에 아이들이 남겨놓은 빈 그릇들을 보니
더더욱 설거지할 엄두가 나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정말 내 영혼 안에 있는 설거지 거리도
그때 그때 해야지 미뤄두면 점점 더 엄두도 안 나고
하기 싫어짐을 절실히 깨닳았습니다.
다음날 돌아와선 식사 후에 비장한 각오로 설거지에 매달렸습니다.
여름날 식사후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유혹을 뒤로 하고
경건하게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싱크대 밖에까지 어지럽게 널린 그릇들을 바라보니
괜히 주눅이 들고 빈 그릇들 앞에서 풀이 죽었는데
일단 시작을 하고 보니
그런대로 재미도 있고 흥이 나더라고요.
마지막 접시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열심히 문지르고 비비며 닦아서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도 기분이 상쾌하고
마치 내가 위대한 일을 한 것처럼
어깨도 으쓱거려졌습니다.
영혼의 설거지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릇 잔치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잔치의 주인공들입니다,
모든 축하와 선물, 그리고 영광이 이 사람들에게 쏠립니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의 주인공인 셈이지요.
또 한 종류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풍성하고 먹음직한 잔치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비록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손님들로부터 찬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거지를 비롯해
상을 치우고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이지요.
잔치는 끝나고 손님들도 다 돌아간 터라
누가 잘했다고 칭찬해줄 사람도 없이
남은 것이라곤 온갖 쓰레기와 피곤 뿐인데도
저려오는 손발을 주물러가며 뒷정리를 하는 이 사람들로 해서
다음날 또 다른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손은 음식을 준비하는 손만큼이나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분들의 손길이 있음을 압니다.
마치 Vermont에서 만났던 숱한 들꽃들처럼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하지 않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해서 이 세상에서
조금은 천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가장 낮고 겸손한 곳에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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