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rmont에서 보낸 하루 - 새벽
일요일 아침에는 보통 축구를 한다.
따로 운동을 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축구를 한다.
그런데 눈이 녹질 않아서 부득이 두 주를 걸러야 했다.
아내는 이때다 하고 친구 부부와 아침 약속을 잡아 놓았다.
축구를 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아침 약속이 있으니 멀리 갈 수도 없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내 마음의 고향인
Piermont로 향했다.
작은 웅덩이에 눈이 녹은 물이 고였다.
가로등 불빛이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그런 새벽이었다.
갈대 밭 옆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의 높이 만큼 참으로 겨울의 키도 컸던
그런 겨울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다.
갈대, 그리고 달.
갈대 머리 넘어
저 편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붉은 물감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내게도 아직 기대감이,
그리고 감격이 살아 있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눈 속에 파묻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은데도
눈을 헤집고 넌지시 고개를 내밀고
맑은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는
우리집 뜰의 snow drop을 발견할 때 느끼는
그런 감동이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해 뜨기 전의 하늘은 이렇게 보라 빛을 띠다가
자주빛, 주황빛,황금빛으로 변한다.
그 황홀한 빛의 교향곡을
온 몸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마음이 바빠졌다.
내가 자리 잡은 곳 앞에 작은 바위 둘이
강 물 속에 잠겨 있었다.
말 없는 검은 바위 주위로
강 물은 온갖 색으로 물들며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기만 한 바위
새벽달은
아직 지지 않고
숨 죽여 아침을 맞고 있다.
해가 뜨면 잊혀지는 존재.
달이 참 날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
새벽 하늘을
비행기가 날고 있다.
아침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게
처음으로 온다.
비행기가 느린 피라미 같다.
비행기 구름이
물 위에 내려 앉았다.
이 새벽,
바람도 없이 고요한 강 물,
그리고 작은 바위 둘.
그리고 나는 나를 잊었다.
강물에 비친 갈대와 구름.
강물에도 색이 있었던가?
무슨 색이었지?
잠시 내 머릿 속은 black out 상태가 되었다.
-혼돈-
색이 부리는 마술에 풍덩 빠진 것이다
해는 뜨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자리를 뜰 시간이 온 것이다.
닐이 밝고 강 옆의 풍경이 눈에 들어어기 시작했다.
떠 다니던 얼음 덩어리가
선착장이 있던 곳의 나무 기둥에 걸렸다.
강 가의 갈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참 많이 여위었다.
강 물 소리를 들으며
비울 것을 다 비운 자의 모습일 것이다.
다시 돌아나오는 길의 갈대 숲은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이 스치는 갈대 숲에서는
금빛으로 서걱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둠에 묻혔던 갈대 숲에
햇살이 들며
숲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해,
햇살,
다시 살아나는 숲.
나도 갈대 숲 가에서
오래 오래 머물고 싶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어둠이 덕지덕지 묻은 내 영혼을 훌훌 털어나고
나도 갈대처럼 빛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