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크리스 마스 카드
그러고 보니 카드의 숫자가 확 줄었다.
이메일을 통해서 인사를 주고 받으니
새삼 카드를 보내고 받는 것이
좀 머쓱한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카카오 톡인가 하는 걸로
실시간 대화가 오고 가니
미리미리 준비해서 보내야 하는,
손으로 쓰는 카드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민 와서 바쁘게 살 때에는
한 해의 안부와 새해 인사를 하느라
12월 초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런 면에 영 게으른 나도
아내의 등 떠밈에 못 이겨
몇 군데 카드를 쓰고
아내와 같이 인사를 해야 할 분들에게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이름을 적어 넣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성탄이 가까와지면
크리스 마스 트리 밑에는
우리집으로 배달된 카드가
제법 수북하게 쌓이기 마련이었다.
올 해 우리집에 배달된 크리스 마스 카드는 단 두 장.
둘 다 감옥에서 온 것이다.
하나는 나의 대자 프란치스코에게서,
또 하나는
Garrett Wilson에게서 온 것이다.
내 대자 이야기는 전에 쓴 적이 있다.
(참된 피난처http://blog.daum.net/hakseonkim1561/125
그들에게 감옥 밖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에 배달된 카드가 두 장이다.
감옥에서 내게 온 두 장의 카드가 눈물 겨웁게 반갑고 고맙다.
그렇지만 새 해엔 한 장의 카드도 못 받는 한이 있어도
감옥에서 오는 카드는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지금 두 사람은 Green Haeven이라는 감옥에 같이 있다.
2년 전인가 대자에게 혹시나 하고 물어보니
기적같이 한 동안 나의 무심함으로
연락이 끊겼던 Garrett를 알고 있었다.
저 캐나다 국경 근처에 있던 감옥에서
대자가 있는 감옥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래서 면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지난 크리스 마스에도 다녀 왔다.
두 사람을 한 꺼번에 면회를 할 수 없어서
나는 Garrett와,
아내는 대자와 면회를 했다.
꽤 오래 전에 썼던 뉴욕 카툴릭 방송의 원고를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 주엔 아주 특별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편지 봉투 뒷면엔 Clinton County Jail이라는
빨간 스탬프가 찍혀 있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누가 감옥에 간 사람도 없는데 감옥에서 편지라니?
이상하기도 하고 또 까닭없이 피어오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다보니
20여년 전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더군요.
편지를 쓴 주인공은 Garrett이라는 이름을 가진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커다란 흑인 아이였습니다.
처음 그 아이를 본 건 아마도 84, 5년도일 겁니다.
그때 나이가 열 살 전후였으니까 지금은 설흔을 갓 넘긴 청년이 되었겠지요.
그 아이는 악마의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된 일은 다 골라 했습니다.
물건을 훔치는 건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엔 그 당시 제가 일하던 야채가게의 트럭을 훔쳐 달아나거나
손님들 차를 훔쳐 온 부르클린을 마구 운전해서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 기억들을 되살려보니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매일 그런 일과 씨름을 해야 하니 사는 게 참 고통스럽더군요.
그 아이 때문에 미국생활이 저주스러워질 정도였다면 대충 이해가 가실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엄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결국 열 대여섯 살쯤, 권총으로 강도짓을 하다가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에서 사라졌습니다.
물론 제 기억 속에서도 아침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십 몇년 만에 자기 얼굴처럼 둥그런 글씨의 편지로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저를 Second Father라고 부르며, 제 두 아들의 안부도 묻더군요.
Garrett은 제 두 아들처럼 저를 '아빠'라고 부르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야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Garrett는 말썽을 부림으로써 자기에게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끔씩은 제가 그 아이에게 따뜻한 말도 건네고 다정한 몸짓도 보여준 기억이 나긴 합니다.
Garrett는 지금 아버지의사랑이, 그리고 사람의 정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장도 쓰고 한 번 면회도 가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아직은 자신이 없고 희미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그 분’을 그 아이에게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저같은 변덕쟁이가 아닌 한결 같은 그 분의 사랑에로 안내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인간은 모두가 죄인으로서 회개해야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가르쳐주십니다.
또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인들 안에서 생활하시며 자비를 베푸심을 보여주십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대로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꺾어버리지 아니 하시고,
심지가 깜빡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시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지금 감옥에 있는 Garrett를 위해 기도합니다.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방송원고 중에서 / 김학선
5.6년 전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모두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이 편지를 큰딸이 읽기 시작했는데
눈물이 가려 마치지 못하고...
세째, 큰아들 그리고 둘째에 가서야 겨우 읽기를 마쳤습니다.
소외된 이웃, 불우하게 자란 사람들, 누구도 판단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공감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하고,
더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말로 새해 덕담을 대신 했습니다.
Garrett의 편지는 우리 가족이 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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