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몇 해 전인가 우리 부부가 잘 아는 신부님이
우리집에 오신 적이 있다.
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보니
신부님의 손에는 쇼핑 백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조심조심 다른 짐과 차별 대우를 하며소중하게 다루셨다.
무언데 그리 조심스럽게 다루시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집에 와서 보니
성가정 상(statue of holy family)이 들어 있었다.
우리집에 선물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조심스레 모셔온 것이었다.
서울의 어느 성당에 원래 조각상이 있고
우리집에 가지고 오신 것은 축소해 만든 석고상이었다.
보통 성 가정이라고 하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말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비롯된 성가정.
모든 기독교인들이 닮고 싶어 하는
가정의 모델인 셈이다.
난 처음 성가정 상을 보았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요셉 성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보이지 않는
성 가정 상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손 아래
투박한 남자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뒷 쪽에
그것도 아랫 쪽으로
온 가족을 꽉 끌어 안고 있는 요셉 성인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앞에서만 대충 보면
요셉 성인이 보이질 않는 좀 부족한 듯한
조각상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 요셉의 뒷모습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자신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식을 잉태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또 그 아이 때문에
머나먼 이집트 땅까지 피난을 떠나야 했던 요셉 성인.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히
해애 할 일을 했던 요셉 성인의
고뇌와 믿음, 겸손 같은 것이
조각상에 새겨진 손과 뒷 모습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아내의 세례명은 마리아고
나는 요한이다.
그런데 나를 요한 대신
요셉으로 혼동해 부르는 사람이 더러 있다.
아니 제법 심각하게 많이 있다.
아내가 마리아이다 보니
내가 요셉이면
자연 성가정이 연상되기에 그런 것 같다.
사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성인이 요셉이고
가장 닮고 싶은 분도 그 분이다.
나자렛의 가난한 목수로서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을 하셨던 분.
자기의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게
그렇게 가정을 지키셨던 겸손한 분.
얼마 전 우리 가족들의 facebook에
우리에게 조각상을 선물했던 그 신부님까지도
급기야는 나를 요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요셉 성인처럼 겸손하게
성가정의 가장 노릇을 잘 해서가 아니라
말만 앞세우지 말고,
겉으로 드러내지만 말고,
정말 요셉 성인처럼 되라는
그런 바람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말 없이 고요히,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껴안는 삶, 그런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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