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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한국 방문(1)

 

한국방문

 

 

첫날.

 

뉴욕 JFK에서 00시 50분 출발한 비행기는

아주 길고 지루한 밤을 날아

열 너덧 시간 걸려서야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전 4시 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뉴욕을 출발하던 날은

토요일을 막 넘기고 일요일로 넘어간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을 하고 난 후의

피로감은 대단했다.

토요일 하루만의 피로가 아니라

일주일 내내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왔다.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이

뻑뻑하게 무거웠다.

 

비행기 좌석에 앉았어도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좌석이 뒤로 좀 젖혀진다고는 해도

불편한 자세로 앉아서 잠을 잘 수 있는

재주는 애초에 내겐 없었다.

꾸벅꾸벅 몇 번 고개를 떨구고 나서

비행기 창 밖을 내다 보아도

보이는 것은 늘 먹물같은 어둠만이 전부였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맴돌았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한국에 다녀온 지 거의 일 년이 지났다.

아버지 1주기가 어머니 8순과 하루 전후로 맞닿아 있었기에

이 두 행사를 치르기 위함이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이었다.

나로서는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격이었다.

그러기에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다니는 건

 부차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두 행사만 잘 치르면

다른 일들은 설사 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후회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날 약속이나

어디 다녀올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인천공항도 아직 잠에서 덜 깬 것 같았다.

상점도 대부분 닫혀 있었다.

분당까지 가는 공항 버스 운행 시간을 알아보니

5시 45분인가에 첫 차가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난감하고 조금은 서글펐다.

누군가가 마중나오는 사람도 없이

새벽시간의 허전한 허기를 아내와 둘이서 견뎌야 하다니----

 

주위를 둘러보니 맥도날드가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이럴 때의 여유는 작은 형벌 같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채워야만  하는 수형자의 형기 같은----

 

커피와 함께 핫 케익을 먹으니

뱃속의 허기는가조금 메꾸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긴 밤을 지나 왔는데도

아침은 참으로 더디게 왔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나와서 보니

벌써 사람들은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비행기도 도착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뒤 두 사람까지만 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새벽 시간 붐비지 않는 길을

시원하게 달렸다.

기사는 차 안의 불을 꺼서

승객들이 대부분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내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했다.

버스 창 밖으로 스치는 경치 하나하나가

내겐 새로왔고 또 그리웠다.

 

분당의 서현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광주로 갔다.

어머니를 뵙고 짐을 푼 후에

밖으로 나와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난 후 어머니는 집으로 가시고

아내와 난 찜질방으로 갔다.

샤워도 하지 않고 TV 앞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수면방이라는 곳이 있긴 했지만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훨씬 잠 속으로 빠져들기가 쉽기에

TV 앞에서 잠을 청했던 것이다.

일 분이 채 되기도 전에 잠 속에 쑤욱 가라 앉았다.

중간 중간 깨기는 했어도

점심도 거른 채 푸욱 자고 일어나니

저녁 일 곱시 가량 되었다.

주위는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계신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신선한 공기를 맡으니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정말 오랜 만에 어머니가 하신 밥을 먹는데

음식 맛이 참 어색했다.

이젠 누구를 위해서 음식을 하실 일이 거의 없으신 어머니.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기본적인

음식만 만들고 드시는 어머니에게서

솜씨 같은 것은 이미 퇴화한 지 오랜 것 같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 안에서

기운 뿐 아니라 이런 솜씨나 능력 같은 것도

서서히 소멸한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의 쓸쓸함이

어머니의 음식 속에서 배어나와

내 입안을 채웠다.

 

그런 슬프고 먹먹함으로 첫  밤을 맞았고

낮 동안의 잠도 부족했던지

나는 또 잠 속으로 깊이 가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