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 생신
7월 15일은 우리 아드님 생신이다.
자기 자식을 감히 아드님이라고 높여 칭하는 것이
낯 간지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큰 아들 준기는
딸만 셋을 내리 낳고 생긴 아들이다.
우리 부부가 아들을 낳으려고
무진 애를 쓴 것도 아니고
딸만 셋이라서 억울한 것도 없었다.
아들이라고 해보아야
그냥 식구 숫자 하나 더 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준기의 탄생이 특별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첫 아이이자 큰 딸인 소영이의 임신 소식을 들으시고는
아버지는 태어날 아이 이름을 '준기'라고
며칠 몇 밤을 심혈을 기울여 지어 놓으시고는
사내 아이가 태어나기만
오매불망 기다리신 터였다.
실망은 하셨지만
첫째가 딸인 건 그런대로 견디실만 했다고 한다.
둘째 딸 지영이가 태어났을 때도
무지 서운하셨지만 꿋꿋이 참으셨다.
다른 도리가 없으셨으니까.
그런데 셋째 마저 딸이라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온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으셨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남아 선호 사상을 탓할 것만도 못되는 것이
3타수 무안타.
남녀 성비가 거의 1대1이라는 걸 감안하면
확률의 법칙마저 빗겨간 셈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실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중에 아드님이 내어난 후에
아버지께 여쭈었다.
"넷째도 딸이면 아이 이름을 무어라고 지으시려고 하셨어오?"
"이번엔 딸이라도 무조건 준기라고 하려 했다."
그럲게 우리 아드님에 세상에 태어났다.
이 아드님 덕분에
셋째 선영이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남동생 보게해준
길라잡이역을 했다는 이유로======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아들을 기다리시던 아버지께
별로 하지 못했던 효도를 한 셈이 되었으니
아드님이라 불려도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다.
아드님이 아드님인 이유는 또 있다.
준기가 태어나던 해에
지금 하고 있는 세탁소를 시작했다.
경험이 없는데다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사업은 대박이 났다.
그당시 한국에서는 한 집에 하나 낳기 운동 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처럼 아이 다섯씩 낫는 집은
희귀종, 혹은 야만인 취급을 받던 때였다.
우리가 천주교 신자이기에 주시는 아이들을
생기는 대로 덥석덥석 받았다.
그런데 아이 키우는 것 중 경제적인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멧세지가
우리 아드님을 통해
위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준기는 또 필연적으로
'아드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아드님 준기
우리 아이들 중 서열 4위.
1990년 7월 15일 생.
아드님이 미리부터
자기 생일은 한국 식당에 가서
친구들과 불고기를 먹겠다고 했다.
아내가 힘들어도 집에서 대접하자고 해서
우리 집에서 아드님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대학 졸업하고 일 년이 지났지만
집에 돌아와 있는 친구들이 대 여섯이 있는 모양이다.
아내는 주방장.
나는 웨이터.
괜찮은 조합이다.
개스 불보다 차콜로 하는 바베큐의 맛이 월등하다.
차콜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사그러들고 남은 불이
진짜 불이다.
그러니 불과 연기가 사그러 들고
순수한 불만 남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고기가 타지도 않고
맛도 좋다.
날은 더운데 불 옆에 있는 것도 그렇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찍었다.
데크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의 창에 비친 다육이
더운 날씨에도저리 싱싱할 수 있음은 무엇 때문일까?
데크에 나오니
더위가 떼로 몰려오는 것 같은데.
꽃과 식물들이 다 제 자리에서
손님 맞을 차비를 끝냈다.
아내가 평소에 사랑의 손길로 다듬고 만져주어서인지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하고 정갈하다.
아드님이 소주를 사오셨다.
별로 마시지도 않는 소주로 건배를 할 모양이다.
먼저 도착한 Kevin과 Casey.
왼쪽의 Kevin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
그 아이의 미소에 대해서.
웨이터인 내가 고기 쌈 먹는 시범을 보였다.
상추와 깻잎에 고기를 올리고
마늘과 고추를 싸서 고추장을 발라
한 입에 넣었다.
친구들도 따라서 실습.
미국아이들이라 고추와 마늘은 선택.
고추장은 조금만 얹어도 좋다고 했다.
식사와 이야기가 이어지고.
식사가 끝난 뒤 집안으로 들어와
케익도 먹고----
아드님이 물었다.
불고기 남은 것 있냐고.
모르는 척 되물었다.
왜?
친구들이 불고기가 너무 맛이 있어서
싸가고 싶단다.
(다 준비해 두었다. 어디 장사 한 두 번 하니?)
그럼 그렇지.
우리 마님 음식 솜씨며,
내 고기 굽는 솜씨 하며
어디 버릴 데가 있어야지.
그런 요청이 안 들어오면 섭섭할 뻔 했다.
음악가가 연주가 끝난 후
앙코르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맥주와 음료수를 담았던 아이스 박스.
내겐 낯이 설었다.
아마도 아드님이 학교 다닐 때 쓰던 것이었나 보다.
무언가 추억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났다.
윗 쪽의 'Love' 'Grace'. 그리고 하트.
그냥 사랑, 은총이라는 평범한 단어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얼마 전 헤어진 아드님의
여자 친구의 이름이 Grace였다.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준기도 무심히 저 단어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나 끝내 묻지는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는 아픔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은 법이니까.
해가 기울었다.
저녁이 늦을 때까지 아드님과 친구들은
함께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참 자알들 논다.
그런데 우리 아드님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너무 좋아한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지난 주일에도 친구들과
낮에는 테니스를 몇 시간 치고 오더니
오후 늦게는 골프를 치러가서
저녁 아홉 시나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러니 잔디 깎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고 보면
우리 큰아들 준기는
더 이상 '아드님'이 아니라
'아들 녀석', 혹은 '아들놈'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올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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