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춥다.
무척 추울 거라는는 일기예보 때문에
미리 얼어서인지 더 춥다.
오늘 아침 온도가 화씨 0도 가량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청바지 안에
얇은 여름 잠옷 바지를 껴 입었다.
더위엔 약하지만 추위엔 이상하리만치 맷집이 좋은 난
강원도 최북단에서 군대 생할 할 때 빼곤 내복을 입은 적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군대에서 지급된 것 말고는
평생 내복을 가져본 일이 없다.
아무리 추워도 내복을 입지 않는 것이
별로 내세울 거리가 없는
내 자존심의 큰 몫을 차지한다.
마치 몰락한 양반의 족보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일기예보를 듣고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비록 실내에서 일을 하지만
사람들이 문을 열 때 밀려들어오는 찬 바람이
언제부터인지
다리 아래 쪽으로 심상치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고
이젠 그 충격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게
영 힘에 부침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아주 앏은 면으로된 잠옷이긴 하지만
오늘 새벽 바지 안에 껴 입으면서
그동안 나와 함깨 추위를 견디며 동고동락해 왔던
나의 자존심을 배반하는 것 같아서
제법 부끄럽고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비겁하게 내 한 몸 추위에 견디려고
얇은 여름 잠옷 바지 한 겹 더 두른 것이
마치 오랜 수절 끝에 결국 절개를 지키지 못한
여인의 마음이 이럴까 할 정도로
안타깝고 부끄러웠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젠 추위를 견디기가 좀 벅차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비록 얇긴 하지만 누구에게 들킬까 하고
은밀히 껴입은 잠옷 때문에
추위를 제법 견딜만 한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젠 '그깟 추위쯤이야' 하던 자존심이나
젊은 패기 하고는 이별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좀 서글프다.
세탁소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손님을 따라 들어온
찬 바람 한 자락이
왠지 내 가슴 속에도 밀려들어오는 것 같다.
이왕 반 세기 넘게 지켜온 지조를 꺾었으니
이 겨울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나도 이 참에 내복 한 벌 장만해야겠다.
아참.
그런데, 그런데
이 추위보다도 더한
삶이 가져다 주는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내복은 어디서 구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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