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하루 종일 비.
선영이가 NewYork Phil 연주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아내와 함께 저녁 나들이에 나섰다.
링컨 센터 앞의 연주회 포스터에도
빗방울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온 영혼까지 젖어 있었던 날.
지휘자는 Lorin Maazel.
box office에서 공연 시간이 다 되어서 산 티킷이라 그런지
무대 바로 밑, 맨 오른 쪽이 우리 좌석이었다.
고개를 왼 쪽으로 거의 80도, 위로 45도는 틀어야
지휘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여파로 잠을 자고 난 오늘 아침까지도 목이 불편하다.
첫 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Bronfman
처음 보고 듣는 피아니스트였다.
내가 음악에 대한 편식이 심하고
과문한 탓이다.
어려서부터 유명했던 이 피아니스트를
오늘에서야 만났다.
58년 개띠에 육중한 체구.
돌 된 아이의 볼에 붙은 젖살처럼
그렇게 볼에 살이 오른 피아니스트가
빠르고 강하게 연주할 때면
어김없이 볼살이 출렁거렸다.
게다가 대개의 피아니스트들은 연주를 하면서
입을 웅얼거리는데
이 연주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볼살 오른 어린 아이가
옹아리를 하는 것 같았다.
Lorin Maazel.
LP판으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이 우리 집에 있다.
거의 40년이 되었다.
앨범의 표지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Lorin Maazel을 지척에서 보았다.
무대 바로 밑이라
그만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첫 줄에 앉은 제 2 마이얼린 주자들의 등과
더블 베이스 주자 몇이 보였고
지휘자 저 쪽의
제 1 바이얼리 주자들의 앞 모습이 나란히 보였다.
다른 악기 주자들은 그저 소리로만 보았다.
40여년 전 수염 깎은 자리가
파랗던 그가 아니었다.
지휘하는 모습이
열정적인 음악가가 아니라
사색하는 철학자 같았다.
머리는 빠지고
세월이 스쳐간 그의 이마엔
세 겹 주름이 만들어내는 굴곡이 뚜렸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 같았다.
대학 1학년 때,
첫수업을 하시던 교수님 생각이 났다.
그 교수님은 자기를 교수라 하지 않고
'선생'이라 칭하곤 하셨다.
다리를 약간 저시고
머리가 하얗게 세신 그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무슨 학문을 하든, 아니면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면
그 삶은 성공한 것이다."
음악을 들으러 가서는
음악을 듣지 못하고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의 겉모습만 보고 돌아온 나는
달을 보라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바보가 아닌가.
제대로 세상도, 사람도 바라볼 줄 모르고
그저 발 밑이나 쳐다보며
살아온 시간들이 아닌가.
사람을 보는 눈,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내 육신의 눈처럼
흐리기만 하다.
내 마음에도
종일토록
비만 무심하게
내렸던
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