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 - 강서 둘레길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 - 강서 둘레길

애당초 2023 년의 한국여행에는 구체적인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공짜로 한국을 다녀올 수 있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예정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성지 순례 대신

항공료를 (거의)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행을 택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결과적으로 현지 상황 때문에 무산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고등학교 동기들 몇이서 강서 둘레길을 걷는다고 해서

나도 슬쩍 끼어서 걷기로 했다.

어차피 특별한 목적이 없는 여행이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주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고교 친구 다섯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둘레길을 걷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내가 꼽사리 끼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영일이와 동희는 연전에 청계산 산행을 같이 해서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정민이와 창원이는 다른 동기들과 캘리포니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나도 북가주 여행에 동참을 해서 일주일 동안 동고동락을 했다.

특별히 정민이와 청원이, 그리고 상무는

재작년  우리가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만나서

회포를 푼 적이 있다.

 

다섯 친구 중 둘은 작년에 교수직에서 정년퇴직을 했고

또 다른 친구 둘은 몇 해 전에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했으며

또 한 친구는 꽤 오래 전에 해군 장교로 전역을 했다.

나도 작년에 은퇴를 해서

결과적으로 나를 포함해서 여섯 백수의 둘레길 걷기가 성사되었다.

 

날이 제법 쌀쌀했다.

 

집결지인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역 3번 출구에서

다섯 친구들과 만났다.

한 친구는 내게 핫팩을 내밀었다.

햇팩은 차가운 내 손에 온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 핫팩의 온기는 친구의 마음이

손을 통해 내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핫팩은 손뿐 아니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친구들은 각자 함께 나누어 먹을 간식거리를 가져왔다.

사과와 귤같은 과일과 고구마, 에너지 바, 박카스 젤리,

커피와 대추차 등등이 몇 차례 휴식 시간에 나누어 먹은 간식 리스트다.

 

나는 친구들이 나누어주는 간식을 널름널름 받아먹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는 모든 암묵적인 준비물에서 열외 되었다.

사실 나는 늘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로 빚을 졌다.

그래서 잠시 쉬는 시간에 오늘의 점심은

내가 대접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친구들에게 한 끼를 기쁘게 대접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 제안에 거부감을 드러내다가

마침내 내 뜻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걷는 동안, 그리고 쉬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가면서 겼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아주 사소한 삶의 이야기가 주제였다.

아니, 주제라는 말을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그런 이야기였다.

 

삶이 꼭 고상할 필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범함, 색깔 없는 삶의 모습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맞는 삶의 여백,

그 자유에 대해 우리는 만장일치로 찬양을 했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황금기라는데 동의를 했다.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우리는 주꾸미 볶음 정식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식사비 계산을 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믿었는데

한 친구가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고 그 결정을 파기해 버렸다.

식비를 그가 계산을 해치웠다.

 

모든 것은 다 내가 방심한 탓이었다.

경계를 늦추고 가드를 내린 권투선수가 결정적인 한 방을 맞은 셈이었다.

그때 상황을 복기해 보니

내 위치선정에 심각하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어서 운신의 폭이 적었고,

미국의 경우처럼 식당 직원이 계산서를 들고 오기를

무작정 기다린 것도 나의 실책이었다.

 

약속한 사항을 숨 쉬듯 아무런 부담도 없이

어기는 나쁜 친구들.

비단 오늘 함께 걸었던 친구들 뿐 나쁜 것이 아니다.

예외 없이 내가 만나는 친구들 모두 다 그렇다.

나는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건 왜일까?

 

나도 이제 좀 더 영악해져야 될 것 같다.

나도 이렇게 나쁜(?) 친구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나빠져야 할 것 같다.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나쁠까?

 

나도 나쁜 친구 중 하나가 되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가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The Golden Age of "Bad Friends" - ***Gangseo Dullegil

 

To begin with, my trip to Korea in 2023 didn’t have any specific purpose or reason.

If I had to name one, it was simply to use up my airline miles before they expired at the end of the year.

Instead of going on the planned pilgrimage to Israel, I opted for a trip to Korea, where I could (almost) skip paying for airfare.
Ultimately, the pilgrimage to Israel was canceled due to local circumstances.

Coincidentally, on the day after I arrived in Korea, some of my high school friends were planning a walk along the Gangseo Dullegil Trail.
Since I didn’t have a specific agenda for my trip, I decided to join them.
What better way to spend a fulfilling time than walking with friends and sharing the stories of our lives?

Five of my high school friends walk trail together once a week.
Today, they made an exception and allowed me to tag along.

Young-il and Dong-hee had taken me on a hike up Cheonggye Mountain years ago,
creating unforgettable, precious memories.
Jung-min and Chang-won had traveled to California with other friends,
and I had joined them for a week-long adventure in Northern California.
Notably, Jung-min, Chung-won, and Sang-moo also reunited with me during my month-long stay in Jeju two years ago.

Out of the five friends, two retired as professors 2 year ago,
two more had retired from their workplaces a few years ago,
and one had been discharged from the Navy long ago.

Having retired last year myself,
this walk among six retirees became a reality.

The weather was quite chilly.

We met at the 3rd exit of Banghwa Station on Subway Line 5,
where one friend handed me a hand warmer.

The warmth of the hand warmer spread from my cold hands to my heart,
as if my friend’s kindness flowed through to my core.
That small warmth didn’t just heat my hands—it warmed my spirit.

Each friend brought snacks to share.
The list of snacks we shared during our breaks included fruits like apples and tangerines,
sweet potatoes, energy bars, Bacchus jelly, coffee, and jujube tea.

I happily received the snacks they shared.
Being the one who had come from the U.S.,
I was exempt from all implicit preparations.

In truth, I’ve always felt indebted to my friends in many ways.
So during a break, I declared that I would treat them to lunch today.
Out of gratitude and a touch of guilt,
I genuinely wanted to make them happy by sharing a meal.

At first, they were reluctant to accept my offer,
but they eventually seemed to go along with it.

While walking and resting, we shared stories about life.
These were trivial, everyday stories—
so trivial, in fact, that even calling them "topics" felt like an overstatement.

Life doesn’t need to be grandiose.
The ordinary, uncolored moments of life often feel the most genuine and beautiful.
After working hard for decades, we unanimously celebrated
this newfound freedom, the blank spaces of life.

We agreed: this is the golden age of our lives.

After finishing our walk,
we had lunch at a stir-fried octopus restaurant.

But then a problem arose.

I had assumed it was settled that I would pay for the meal.
However, one friend unilaterally overturned that decision
and took care of the bill without consulting anyone.

It was entirely my fault for letting my guard down.
It was like a boxer getting knocked out by a decisive punch because they dropped their defenses.
Looking back, I realized my positioning was fatally flawed.

I was sitting in the middle, limiting my ability to act,
and I naively waited for the restaurant staff to bring the bill,
as they do in the U.S.

These bad friends, who break promises as effortlessly as breathing.
It’s not just today’s group of friends who are “bad.”
Every friend I meet is the same.

I am living in the golden age of bad friends.

Yet, why do I find myself smiling every time I think about these moments with my bad friends?

Perhaps it’s time for me to become a bit more cunning.
To stand up to these so-called bad friends,
maybe I need to truly become bad myself.

How bad can I really be in this golden age of bad friends?

I hope this golden age of bad friends continues for a long, long time,
where everyone becomes a bad friend,
and everyone finds happiness.

 

***Gangseo Dullegil (강서 둘레길) is a scenic walking trail located in Gangseo-gu, a district in Seoul, South Korea. The trail is part of a broader effort to promote outdoor activities and eco-friendly living in urban areas. It is designed to connect people with nature while showcasing the area's cultural and ecological features.

 

Potos by 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