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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11)

부치지 못한 편지 (11)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죽음은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의 거의 마지막 지점에 아버지는 도달하신 것 같았다.

결승점이 있는 운동장의 마지막 몇 바퀴를 남겨둔 마라톤 선수처럼

몸 속엔 남아 있는 힘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릿 속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하기야 나도 아버지가 위독하시단 소식을 접하고부터는

거의 눈을 부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병원 밖으로 나갔다.

꽤 넓은 광장이 있었다.

광장 한 바퀴를 돌면서 깊게, 아주 깊게 숨을 들여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내 쉬었다.

내 폐 안으로 들어온 바깥 공기는 몸 속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었던 잠을 몰아내었다.

잠들지 못한 도시의 불빛이 졸음에 겨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병원도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고 몇 군데만 불이 켜져 있었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군대시절 철책선 근무할 때 그랬다.

모두 잠든 어둠 속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슬펐다.

밤에 깨어 있는 존재의 고독.

 

아버지는 주무시는 걸까,

아니면 깨어서 고통 중에 처절한 고독을 맛보고 계신 걸까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 몇이 희미하게 꾸벅이고 있었다.

 

'저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언제고 밤하늘의 별을 본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함께 별을 본 기억이 내겐 없었다.

 

밤하늘의 별,

별의 배경이 되는 깊은 어둠만큼이나 진한 슬픔이

별빛 대신 쏟아져 내릴까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가면

내 아이들과 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 아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의 별 중에서

내 별 하나를 삼고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저 별이 아빠 별이야.'

아이들 중 누구라도 잠 들지 못하는 밤

홀로 깨어나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내가 별이 되어 고독한 아이들 곁에 함께 있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그리움과 동시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별.

 

-난 그런 별이 될 수 있을까-

 

서둘러 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돌아갔다.

동생은 일어나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혼수상태는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이 전염되는 것 같았다.

 

전 날 밤 작은 이모부가 집으로 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혼수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도 있으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둬."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 전에

아버지 숨을 지탱해주는 산소호흡기를 뗄 것인지를 잘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숨을 통제하는 것은 산소호흡기 뿐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옛날의 효자들은 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부모의 삶을 연장하려는

혼신의 노력을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때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죽음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 기사회생했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현재에도 몇 십 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의식이 돌아온 환자의에 대한 신문잡지의 기사들이

어렴풋이 담배연기처럼 내 머릿속을 떠돌다 사라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내가 믿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어떤 인위적인 죽음도 허락하질 않는다는

것이 가장 강하게 내 머리를 때렸다.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이기에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정작 아버지의 고통이 제일로 크겠지만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통도 아버지 고통에 못지 않은 것 같았다.

 

- 나는 신이 아니다 -

아버지의 생명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과

내 인간적인 시선의 충돌.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내야 하는 어머니,

나와 형제들의 고통.

내 삶의 패턴에 미칠  제약들과 병원비 같이

맞닥뜨려야 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도

약삭빠르게 내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왔다.

 

"주님 아버지에게 불어넣으셨던 숨을 거두어 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기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명의 영역을 침범한 내게 벌이 주어진다면

달게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에 아버지의 상태가 그렇게 지속된다면

의사에게 산소호흡기를 떼라는 요청을 하리라고 마음을  굳혔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당돌하게 맞서는 것 같아서 겁이 더럭 났다.

간접 살인을 하는 죄를 짓는 것 같아

결정의 순간 마음은 무간지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실까'하고

아버지의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버지라면 누구도 자신 때문에

어려움과 고통을 받기를 원하시질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내 마음의 고통은 그 밤을 넘기지 않았다.

아버지도 빨리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셨을까

아마 그러셨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하셨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아.버. 지

 

새벽 네 시 반인가

당직 간호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혈압을 재었다.

혈압이 40대로 더 떨어져 있었다.

간호사가 나와 동생을 불렀다.

"혈압도 그렇고 숨을 입이 아니라 턱으로 쉬시는 게 보이시지요.

준비하세요,"

간호사는 하는님이 보내신 천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옆 방에 게시던 어머니를 불렀다.

모두 아버지 곁에 둘러 앉았다.

 

그 순간 하느님의 나라, 곧 천당은 꼭 있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세상을 마치며 아무 보상도 없다면

사는 일이 너무 아프고 쓸쓸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천국은 꼭 있어야 했다.

하다 못해 뉴옥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에게도

기록에 상관 없이 메달이 주어지는데

여든 두 해를 끊임 없이 달리신 아버지에게도 무언가 보상이

저 세상에서 주어져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천당과 지옥에 관한 교리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시라고 말씀 드렸다.

우리 걱정은 하시지 말고

그 분이 부르시면 대답하시라고 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마음쓰시느라 그 분의 음성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숨을 거두 때까지도 청각은 살아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 랑. 합. 니.다.'는 그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긴 거리를 돌아 왔던가.

 

그 처음이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의 숨이 점점 가늘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셨다.

턱이 서너 차례 가볍게 떨리더니

그 길로 숨을 쉬시는 일도 끝이었다.

숨쉬는 고통에서 해방되셨다.

 

거미줄 같은 목숨줄이 끊어지신 것이다.

다시 이을 수도 없는 목숨.

이 지상에서는 아버지와 영영 이별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별의 슬픔보다도

아버지가 육신을 포함한 모든 짐을 벗으셨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내게 찾아왔다.

 

나도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내 쉬었다.

-우리 아버지 성격처럼 이별도 깔끔하게 하셨네.-

 

2012년 10워 3일 개천절 새벽 5시 25분.

아버지는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경계를 훌쩍 넘어가셨다.

아버지가 운명하신 날이 마침

개천절이었다,

낡은 육신은 벗어버리고 가벼워진 영혼은 

열린 하늘문을 지나 하늘나라로 가셨을까.

 

"언젠가 다시 만날 땐 미루지 않고 '사랑한다' 말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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