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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10 )

부치지 못한 편지 ( 10 )

 

아버지의 숨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더 거칠어져 갔다.

호흡의 거칠기가

디크레센토는 없고 크레센토만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답답함과 불안함의 크기도 아버지의 숨소리에

비레해 커져만 갔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은 언제일까.

숨이 멎고, 뛰는 심장도 멎고

그러면--------

 

아버지와는 영 이별인 것이다.

 

아버지는 숨을 들이마신 후 3,4초간 멈추었다가 내쉬는 일을 반복하셨다.

산소호흡기가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숨은 벌써 멎었을 것이다.

 

숨 쉬는 일도 고통이다.

숨 쉬는 일이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 모형을 빚고 거기에 숨을 불어 넣자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는 창세기의 내용은

숨이 사람의 육신을 떠나면 삶은 끝이 나고

육신은 흙과 같은 존재가 됨을 일깨워준다.

숨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숨이 떠난 육신.

병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그날 밤만큼

삶이 별 것 아니라는 허무를 뼛속까지 절절히 느낀 적이 있었을까.

 

가끔씩 코를 고는 동생의 숨소리가 아프게 들렸다.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슬픔 같은 것이

어둠 속에 먹물처럼 번졌다.

숨을 쉬기 위해 기를 쓰며 살아가는 육신의 슬픔은

아버지 뿐 아니라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동생의 숨소리에서도 묻어나와

방을 더 어둡고 침침하게 만들었다.

 

내 삷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조금은 익었다.

벼는 익어가면서 고개를 숙인다.

앞이나 위로만 향하던 눈을

대지를 향해 낮춰 볼수 있게 되는 것이

죽음을 바로 옆에서  경험하며 배우는 교훈이다.

 

지고 있는 걸 내려놓는 일.

 

며칠 전까지도 거동도 못하시면서

스스로 양치질을 하셨다는 아버지.

평생 풀먹여 다린 바지의 주름처럼 꼿꼿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육신의 병과 시간 앞에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새벽 두 시 쯤에 간병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다.

 

아버지는 느끼고 계셨을까.

배설의 뒷처리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그 비참함을.

 

아니면 자존심마저도 다 맡기고 자유로우셨을까.

 

그렇게 무력해진 당신의 모습에서

비로소 해탈에 이르셨을까

모든 것 내려 놓으시고 훌훌 편하게 마지막 길을 가셨으면-------

풀이 빠진 옷은 구겨져도 부드럽고 후들후들 자유로우니까 말이다.

 

건강한 내 폐의 숨을 남은 시간만이라도

얼마간 아버지께 나누어드릴 수 있다면---------.

 

한 반 시간이 지나자 이 번에는 당직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혈압을 재었다.

육십 몇이라고 했다.

우리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가 팔십 언저리였으니까

아버지의 심장도 서서히 풀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팔십 이 년 동안 쉬지 않고 뛴 아버지의 심장도

마지막 박동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

혈압을 재는 일이

아버지의 삶이 언제 끝나는 지 예측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여겨졌다.

 

간호사는 아버지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진통제였을 것이다.

멍 투성이인 아버지의 팔.

검푸른 색이 주는 슬픔.

어둔 바다의 색.

저물녁 강가에서 바라보던 강물의 짙푸른 색.

언제고 늦가을, 저물녁 강가에 서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때는 목놓아 울 수 있을까.

짙푸른 삶의 아픔을 위해,

그리고 아픔도,

슬픔도 강물처럼 흘러가길 바라며

그렇게 강물을 닮은 울음을 울 수 있을까.

 

주사를 놓는 간호사의 손이

어둑한 전등 밑에서 희게 빛났다.

 

주사를 놓던 간호사와 기저귀를 바꾸던 아주머니의 손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 손.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서야

겨우 아버지의 손을 쥔 것 밖엔

아무 것도 아버지를 위해 해드린 것이 없는 내 손.

 

어둠 속에 부끄러워 숨어 있던

내 손으로 다시 아버지 손을 쥐었다.

 

아버지 손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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