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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7)

저녁 10시 쯤 되어서 광수가 자기 처와 같이 병원을 찾았다.

광수를 보며 세월은 나만 스쳐지나간 것 같은 억울함을 느끼곤 한다.

네 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세치 하나 없이 검고 숱많은 머리에다

얼굴엔 주름하나 보이질 않았다.

동안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고 청년의 모습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았다.

세월이, 시간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수와 그의 처 데레사(부모님은 광수의 처를 세례명으로 부르신다)는

아오는 자식 하나 없이

썰렁하게 명절을 보내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우리 대신 자식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그러니 그 고마움으로 따지면

그렇게 싱싱한  청년의 모습을 한  광수를 마냥 부러워해서도 안 될 일이며

오히려 내 젊음을 얼마간 덜어내 그에게 준다해도

내가 손해보는 거래는 절대로 아닐 것이었다.

 

아버지를  뵈면서 말 없는 광수와는 달리

데레사는 여자라 그런가, 아니면 정이 많아서인가

아타까움과 슬픈 감정들을 말로 털어내었다.

 

광수 부부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좀 고통스러워하시기는 했지만

평온 모드였는데 갑작스레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데레사도 아버지가 그 병원에 오신 후 

적어도 한 달 간은 아버지를 뵙지 못한 것 같았다.

변해도 너무나 변한 '고모부'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태도로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멋쟁이 고모부'가 그런 모습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는지 눈물까지 흘렸다.

'멋쟁이 고모부가, 멋쟁이 고모부가------'하며

멋쟁이 고모부를 몇 번 반복하더니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곤 '멋쟁이 고모부' 손을 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정작 어머니나 나, 그리고 동생은 덤덤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성품이며 태도, 옷차림 등이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며 꼿꼿하셨다.

돌이켜 보니 수염이나 머리가 덥수룩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술을 많이 들고 집에 오셔도 술을 마신 '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군대에 계실 때에도 군복에 풀을 먹여

빳빳하게 손수 다려입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곱게 빗어 넘긴 흰 머리까지도

데레사에겐 멋으로 비춰진 것 같았다.

 

데레사의 눈으로 보면

나는' 멋'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아무리 후하게 쳐주어도 아버지의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몇 번 동생과 여행을 다니며 동생이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걸 느꼈다.

동생이 걷는 모습을 보며 언뜻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체형이며 걷는 모습이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

입었던 옷가지도  차곡차곡 아주 예쁘게 개어서 여행가방 안에 넣는 걸 보고

행동이며 성격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입었던 옷은 대충 둘둘 말아 가방에 쑤셔 넣으면 되지

뭘 그리 시간과 공을 들인담.)

 

도대체 정리 정돈이 안 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뒤돌아 보며 (지금은 아내의 잔소리가 두려워 많이 향상되었음)

아버지가 참 많이 답답해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에 이모부가 동생과 나를 불러내셨다.

광수부부가 병원에 오면서

김밥 몇 줄과 오뎅 국(요샌 어묵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내겐 오뎅이라는 말이 더 친근하다)을 사왔다.

아버지 곁을 지키는 동안 가끔씩

뱃속에서 신호가 오긴 했다.

그래도 무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오뎅국을 보니 갑자기 숨 죽이고 있던 허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실내가 추운 것도 아닌데 내 속이 허허로왔던 것이다.

 

오뎅국을 곁들여 김밥 한 줄을 뚝딱 해치웠다.

 

오뎅국과 김밥 한 줄이 주는 위로.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그 소박한 음식이

그날 밤 내게 가져다준 위로의 힘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 위로의 원천은 사람이고

그 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지닌 사랑과 배려의 마음일 것이다.

작은 사랑이나 배려가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일까'

 

적어도 나는 아버지에게만은

그런 사람이질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사랑이 늘 모자라고 인색한 데다가

그 씀씀이라는 것도 우리 아이들이나 곁에 있는 아내에게

집중되고 있으니 아버지는 우선순위 저 밑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되기 일쑤였다.

 

무심.

아버지께 작은 마음 하나 드리는 일조차

잘 하지 못하고  옆으로, 뒤로 미뤄두곤 했다.

 

그 빚이 얼마나 될까?

 

갑자기 머릿속으로 생각 한 줄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맞아,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썼으나

정작 부치지는 못했던 편지가.

 

아버지 의식이 더 가물거리기 전에

부치지 못했던 바로 그 편지를 내 목소리로 읽어드림으로써

아버지에게 느꼈던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보잘것 없긴 하지만 내 사랑을 직접 전할 수 있는 시간이

그 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다.

 

'부 치 지 못 한 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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