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 손자 알현, 그 대가
막내아들이 집에 왔다.
어제 늦게 도착해서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고,
내일은 가족 골프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리고 일요일에 South Carolina로 돌아가는 짧은 일정인데
막내아들은 새로 태어난 조카와의 상견례를
분명 마음에 두었을 것이다.
처음엔 큰아들 집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큰아들이 손자 준호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해서
우리 모두 손자의 행차를 기다렸다.
10 시 15 분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해서
손자를 맞으러 빌딩 밖으로 나갔다.
제법 주차할 공간이 헐렁했다.
아기를 데리고 7층 우리 집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빌딩 앞에 주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주차 표지판을 자세히 살폈더니 오전 8시부터 오후 7 시까지
두 시간 단위로 주차가 허락되었다.
전에도 우리 집이 있는 건물 앞에서 서너 차례 주차 티킷을 받은 적이 있어서
주차 표지판을 살피고 또 살폈다.
드디어 휜 색 SUV가 눈에 들어왔다.
큰아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FIAT라는 작은 차를
아기가 태어날 것을 고려해서 작년엔가 좀 더 큰 차로 바꾸었다.
나도 몇 차례 운전을 한 적이 있어서 눈에 익은 터였다.
아들은 내가 손짓으로 안내하는 곳에 주차를 했다.
나는 교통 표지를 잘 못 읽은 대가로
주차 티킷을 발부받은 전과가 있어서
아들에게 표지판을 다시 한번 살피라고 했다.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두 시간 동안 주차할 수 있도록 주차 요금을 결제했다.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막내아들은 새로 태어난 조카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나와 아내도 그 새 부쩍 크고
얼굴도 환해진 손자를 보면서
흐뭇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는 수제비로 점심을 대접했다.
그리고 큰아들과 손자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들을 배웅하러 건물 밖으로 나와
차를 두었던 곳을 눈으로 살폈다.
그런데 차가. 사.라.졌.다.
흰색의 아들차가 있던 곳에
짙은 회색의 차가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주변을 살폈으나
아들의 차는 감쪽 같이 사라졌다.
아들이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더니
오전 11 시 50 분쯤, 불법주차를 이유로
시에서 차를 토잉(towing)해갔다고 알려주었다.
불법주차라니?
주차요금까지 꼬박 내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다가 문제를 찾았다.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아들이 주차했던 곳은 토요일과 일요일 밖에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인데
금요일인 오늘을 토요일로 착각을 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불법 주차 벌금과 토잉 요금, 그리고 차를 찾기 위해
허비해야 할 시간까지 제법 큰 희생을 큰아들은 치러야 했다.
아들은 육아 휴가 중,
나는 백수.
그러니 날짜 가는 걸 괘념치 않는 아버지와 아들 두 부자가
모두 마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금요일을 토요일로 착각을 한 것이다.
잠깐의 착각으로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소비되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한자 백수는
손이 희다는 말이다.
일을 하지 않으니 손이 흴 수밖에.
나이 먹고 은퇴한 뒤, 손뿐만이 아니라 머릿속까지 하얗게 변해가니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신줄을 놓고 사니 나 자신이 한심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머리 속도 조금씩 비워가는 무소유의 삶으로
한걸음 가까이 가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시간 낭비, 돈낭비는 했어도
손자 준호를 본 값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참 행복한 하루였다고,
수지맞은 하루라고 되뇌어 본다.
Diary of an Unemployed Person - Meeting the Grandson, and Its Cost
My youngest son came home.
He arrived late yesterday, so today he is resting at home,
and tomorrow, he will attend the family golf tournament.
He has a short schedule and will return to South Carolina on Sunday,
but meeting his newborn nephew is surely on his mind.
Initially, we planned to go to my eldest son's house,
but since my eldest son decided to bring my grandson Junho to our house,
we all awaited the arrival of our grandson.
They were expected to arrive around 10:15.
I went outside the building to greet my grandson.
There was a good amount of parking space available.
Considering we had to bring the baby up to our apartment on the 7th floor,
it seemed best to park in front of the building.
I carefully examined the parking signs, which allowed parking for two hours between 8 AM and 7 PM.
Since I had received parking tickets a few times before in front of our building,
I double-checked the signs.
Finally, I spotted a white SUV.
My eldest son had replaced his small FIAT with a larger car last year, anticipating the baby's arrival.
I had driven it a few times and was familiar with it.
My son parked where I signaled.
Given my previous experiences with parking tickets,
I asked him to double-check the signs.
After confirming there were no issues, I paid the parking fee for two hours.
We headed home with my grandson.
My youngest son joyfully met his newborn nephew.
My wife and I were also delighted to see our grandson, who had grown and looked even brighter.
We spent a happy and pleasant time together.
We served sujebi, a soul food for our kids, for lunch.
Then it was time for my eldest son and grandson to leave.
I went outside to see them off and checked where the car was parked.
But the car was gone.
Where the white car had been, there was now a dark gray car.
I rubbed my eyes and looked around, but my son’s car had disappeared without a trace.
After some online searching, my son found out that around 11:50 AM, the car had been towed by the city for illegal parking.
Illegal parking?
We had even paid the parking fee…
After some thought, I found the problem.
Today was Friday, not Saturday.
The place my son parked was only available on weekends, but we mistakenly thought today was Saturday.
My eldest son had to pay a significant amount in fines, towing fees, and time wasted retrieving the car.
He’s on paternity leave,
and I’m unemployed.
So, both a father and son who don’t keep track of the days,
ended up mistaking Friday for Saturday as if under a spell.
A brief mistake cost us quite a bit of time and money.
The Chinese character for “unemployed” means “white hand.”
Not working, your hands stay white.
After retiring and growing older, not only my hands but even my mind is turning white,
and I’m not sure whether to be happy or sad about this.
I feel somewhat pathetic for losing track of time,
but I comfort myself by thinking I’m moving closer to a life of emptiness, gradually emptying my mind as well.
Despite the wasted time and money,
the value of seeing my grandson Junho surpasses it all,
making me feel it was a truly happy day, a worthwhil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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